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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예산 깎았다고 계엄령? 미국선 상상도 못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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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밝힌 이유는 하나같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판검사를 포함해 사법부, 행정부 관료들에 대한 탄핵소추권도 문제가 있지만, 특히 국회의 예산 감축을 빌미로 삼은 게 남우세를 살 내용이다. 국회가 단순히 예산을 감축했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면, 미국은 진즉 계엄령이 선포됐어야 한다. 예산 심의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 분립에 따라 국회가 부여받은 헌법상의 고유 권한이이다. 이를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면 국가에 대한 반역이 되는 셈이다.

미국 연방 의사당의 철제문이 내려간 장면. 의사당 계단에서 야당인 공화당 출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2023년 9월 25일 연방정부 폐쇄(셧다운)을 예고하면서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23.9.25. EPA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긴급 담화에서 "국가 예산 처리도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대책 '예비비' 1조 원과 아이돌봄 지원 수당 384억 원, 청년 일자리,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등 4조 1000억 원을 삼각한 것은 물론 군 간부 처우 개선비에 대한 견제까지 걸고 넘어졌다. 국회가 전액 삭감했다는 주장도 문제지만, 헌법에 따른 의정활동을 문제 삼은 게 더 큰 문제다.

미국은 의회가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하기 전에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으면 정부가 폐쇄(shutdowns)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셧다운이 시작되면 정부 각 부처 산하 기관의 활동과 서비스를 축소하고, 비필수적인 활동은 아예 중단한다. 비필수적인 인력을 무급휴직시키며,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하는 부서의 필수 직원만 유지한다. 셧다운은 행정부가 의회의 의도에 반해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도 발동된다. 지난 2월에도 셧다운 탓에 연방 공무원들이 무급 휴직에 들어가야 했다.

36일의 최장기간 셧다운이었던 2018~2019 회계연도 사이에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추진하던 멕시코 국경장벽 확대가 발단이 됐다. 2013년에는 야당(공화당)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건간보헝개혁안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16일 동안 셧다운됐다.

연방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셧다운으로 혼란을 겪을 수 있지만, 국회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실제로 셧다운 탓에 연방정부는 국립공원과 각급 기관을 일시 폐쇄했으며, 예산 감축으로 인해 관련 공무원의 임금 지급도 중단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2024.12.3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주목할 대목은 1980년대부터 등장한 미국의 셧다운이 벤자민 시빌리티 법무장관의 법적 필요성 제기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법리 차원에서 시작된 논의였지만 1990년대부터 자주 발생했다. 검사라고 같은 검사가 아니다. 미국은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윤 대통령은 특히 "국회가 판사를 겁박하고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켰다"고 주장했지만, 판검사는 물론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이 바로 국회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4일 새벽 한국을 여행하는 미국민에게 여행자 등록을 하라고 당부한 것은 그만큼 예외적인 사건이기 때문일 게다. 대통령이 발동한 계엄령으로 인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반영한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대사관 공식 X 계정에 "상황이 매우 유동적인 만큼 사태 추이를 면밀하게 지켜보고 진전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를 받으려면 여행자 등록을 하라"고 게시했다. 미 국무부는 전쟁, 내란 또는 심각한 자연재해가 벌어진 국가를 여행하는 자국민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등록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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