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2-06-27|12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37자 |
올해 들어 프랑스 파리에서는 일본 붐이 일었다고 한다. 계기는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평범한 파리지앵들은 공동개최 사실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본문화에 대한 그들의 각별한 관심 때문이었다.파리 시내 곳곳에 유행처럼 생겨난 왜식 초밥집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진행되면서 잊혀졌던 한국이 맹렬한 기세로 떠올랐다. 태극전사들이 폴란드와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승승장구를 하자 신문.방송에서는 연일 한국 축구의 놀라운 변신을 찬탄하기 시작했다. 유학생들은 게임이 끝날 때마다 프랑스인 친구들의 축하인사를 받기에 바빴다고 전한다. 때맞추어 지리 잡지 제오(Geo)에서는 한국 특집을 마련했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인기도 상종가를 쳤다. 안정환 선수의 준수한 외모와 안면 보호대를 차고 출전한 김태영 선수의 '투지'가 화제에 올랐고 투박한 외모와 거친 플레이를 보여준 한 선수에게는 '원시인'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관심은 축구에만 쏟아진 게 아니었다. 색채감각에 민감한 국민들이어서 그런지 '붉은 악마'들이 연출하는 웅장한 장면에 매혹당했다. 민영방송 TF1의 8시뉴스에서는 '붉은 악마'들이 자주 비춰졌다. 한국전쟁과 1997년 금융위기 등 한국을 인식하는 낡은 표상(表象)에 붉은색이 더해진 셈이다. 모처럼의 한국 붐은 그러나 생명이 길지 않을 듯하다. 특히 판정시비가 불거졌던 스페인전이 끝나고 난 뒤 눈에 띄게 열기가 식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언론이 음모론을 들먹이며 '몽니'를 부리더니 독일전이 끝나자 "한국팀은 우수한 팀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평범한 칭찬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무관심이 감탄으로, 찬사가 의혹으로, 질시가 평상심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온통 월드컵 결승전으로 옮겨졌다. 축구경기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남길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가 이미지의 향상은 보다 지속적인 관심과, 꾸준한 투자가 있어야만 가능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 그들의 '변덕'이었다. 일본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문화교류의 확대가 그 해결책일 수 있다. 한국경기에 열광했던 파리지앵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다시 겐조 패션에 감탄하고, 초밥을 즐기는 '자퐁(Japon.일본) 애호가'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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