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DJ와 40년 교류 제임스 레이니 前주한 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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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9-08-20|07면 |40판 |종합 |인터뷰 |1784자 |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81·에모리대 명예총장·사진)는 18일(현지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횃불과 같은 존재였다”면서 “40년 지기인 그를 잃은 데 대해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 군정 시절 육군 방첩대 일원으로 여운형·김구 선생의 암살사건을 수사했던 그는 김 전 대통령을 좌익이라고 매도하는 한국 내 보수인사들의 주장에 대해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햇볕정책 역시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실책과 북한의 핵개발로 벽에 부딪혔을 뿐 당시로는 “한반도에 변화를 불러올 적절한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햇볕정책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평가한다면. -햇볕정책이 대북 퍼주기였다는 주장도 있다.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사실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1994년부터 부시가 취임했던 2001년까지 영변 핵시설은 동결됐고, 한국은 그동안 놀라운 경제적 진전을 이뤘다. 햇볕정책이 실패한 것은 조지 부시가 취임하면서 클린턴과 김대중의 정책을 거부하면서 비롯됐다.” -김 전 대통령의 가장 오랜 친구인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 동아태소위원장 같은 사람은 북한 인권문제에 매달리고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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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로만 알려진 그와 대한민국의 인연은 해방 직후인 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에서 목사와 교수, 대학총장, 대사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여러 지점에서 한국과 만난다.
그는 주한미군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정보 분야에서 활동하던 그는 김구 여운형 송진우 등 정치지도자의 암살 사건을 조사하면서 한국의 갈등상을 경험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예일대로 돌아가 신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연합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59년 선교사 파송을 받아 가족과 함께 다시 한국을 찾았다.
레이니 목사는 선교사로서 학생들을 만나 교류하는 데 힘썼다. 연세대 신학과에서 기독교윤리학을 강의했고 ‘아가페’라는 기독 학생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했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을 조직하는 데도 레이니 목사의 공이 컸다. 2019.12. 13.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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