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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s

DJ 서거-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

by gino's 2012. 2. 25.

김대중 전 대통령 國葬 / 그레그 前 주한 미대사 인터뷰
[경향신문]|2009-08-21|04면 |40판 |종합 |인터뷰 |1786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81·코리아소사이어티 명예 이사장·사진)는 18일(현지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아시아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라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가를 맡아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 놓은 드문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부장과 조지 H 부시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처 주한대사(1989~1993)를 지냈다. 미국의 보수파 인사이면서 김 전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지지해왔다.
-고인과 유달리 친분이 깊었는데 이번 부음을 접하고 심경이 어떻습니까.

“매우 슬픕니다. 지난주 그가 입원했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찾아가 꽃과 함께 회복을 빌었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하고 대신 이희호 여사를 만났습니다. 내가 얼마나 깊이 남편을 존경하는지, 남편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전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납치와 투옥, 암살 위협을 견뎌내고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이끌었고,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970년대 납치사건을 계기로 간접적으로 알게 됐지만 80년 대 그의 망명시절 처음 만났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단호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던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한국뿐 아니라 북한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흔쾌히 동참했습니다.”
-납치사건 당시 큰 도움을 줬습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나는 CIA 한국 근무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필립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 김대중이 도쿄의 한 호텔에서 납치됐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누군가 그를 죽이려 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미국의 대응 방침을 확인한 뒤에야 죽일 것’이라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그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 리콴유와 함께 김 전 대통령을 아시아 최고 지도자로 꼽았는데 이유는 무엇입니까.

“52년부터 아시아 문제를 다루면서 많은 아시아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세 분은 모두 나라가 가야 할 길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평가를 한 것이지요.”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90년 대 말에는 매우 효율적인 정책이었습니다. 그것이 한국 현대사의 위대한 순간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받지 않았고 일본 측에서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북한이 실수를 한 것도 분명합니다. 대북 송금 문제가 좀더 잘 다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옳았습니다. 여전히 북한을 상대로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대화를 한다면 핵 없는 한반도의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가 다소 엇갈리는데.

“어떤 위대한 지도자에게도 그런 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 역시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김 전 대통령이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건강악화로 이어졌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비통해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장례식에까지 참석한 건 대단한 정성이었다고 봅니다. 큰 슬픔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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