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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쇠고기는 과학이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11.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인구 1만8000명의 소도시 서머스포트는 광우병 위험 탓에 쇠고기 판매 및 접대를 금하는 ‘보건조례’를 통과시킨다. 레스토랑 업주 측 변호인과 시 정부 간 법정 싸움이 이어진다. 변호인은 “교통사고가 난다고 자동차 생산을 금지할 것이냐”는 등의 정교한 논리로 기세등등하다. 하지만 2003년 워싱턴주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뒤 당국의 광우병 검사 비율이 50%로 줄었고, 같은 목장 소 80마리 가운데 53마리의 유통경로 추적이 불가능했다는 과학자의 증언에 묵사발이 난다. 5년째 롱런하고 있는 ABC TV 인기 드라마 ‘보스턴 리걸’에서 설정한 상황이다. 미국 내 1250만명이 시청한 1편 가운데 ‘틸 위 밋 어게인’ 에피소드다. 사실에 기초한 대본이다. 미국 소비자들에게 광우병은 잠재적인 위험이다. 백인 중상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워싱턴 북서부 주택가에 발두치나 홀푸드 등 유기농 체인점이 있는 이유다. 코스트코나 자이언트 등 일반 유통점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진짜 안전한’ 쇠고기가 2배 이상의 높은 가격에도 인기리에 팔린다. 한·미 양국 관료들이 고장난 레코드처럼 되풀이하는 주장 가운데 옳은 말도 있다. 맞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다 광우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 광우병이 발생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소의 부산물을 돼지·닭에게 먹이며, 돼지·닭 도축장 바닥의 쓰레기를 긁어모아 다시 소 사료로 먹인다. 가축식별시스템(AIS)이 없어 이력 추적이 불가능하며, 광우병 검사 비율이 턱없이 낮다.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들이다. 물론 촛불시위대가 아무리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더라도 축산업계와 의회 및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 농무부의 체질을 바꿀 수도, 바꿀 필요도 없다. 국제적 기준에서 딱 평균 수준의 흥정을 다시 하라는 함성이다.

쇠고기는 과학이다. 한국민을 싸잡아 ‘부정확한 정보’에 휘둘리는 ‘포퓰리스트’(리처드 레이먼드 미 농무차관)라고 매도할 필요는 없다. 방패로 찍고, 물대포를 쏠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정부 100일 동안 100가지 불만이 누적됐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분노의 뚜껑을 연 것은 쇠고기였다. 그렇다면 해결 수순은 쇠고기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념과 배후를 운운할수록 국민적 저항을 덧들일 뿐이다. 촛불의 요구는 2가지로 요약된다. 광우병 위험이 적은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한국민이 즐기는 곱창 등 부산물을 제외하라는 것이다.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며, 지극히 합리적인 주장이다. 누구도 미국과 통상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의 논리는 또 어떤가. 우리의 광우병 대책은 더 엉망이며, 우리 식품의 위생상태는 더 형편없다는 식의 자학적인 사고를 확산하고 있다. “먹어보니 괜찮더라”는 몰과학적 주장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안 걸리면 어떡할 거냐”는 협박을 태연하게 내뱉는다. 게다가 ‘반미 좌파’ 논란이라니…. 그따위 자학적인 생각일랑 사랑하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조용한 시간, 일기장에나 살짝 적길 바란다. 효순·미선이가 우리를 한없이 초라하게 했던 6월이다. 이러다가 진짜 반미 시위로 연결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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