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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쇠고기 다음은 자동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22.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이 2006년 12월 몬태나주 빅스카이에서 열릴 때만 해도 미국 측 요구의 상한선은 ‘뼈 있는 쇠고기’였다. 이 지역 출신인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은 “몬태나산 쇠고기는 뼈가 있건 없건 맛있고 안전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던 것이 한·미 정상이 지난 4월18일 캠프 데이비드 만찬장에서 다시 몬태나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마주했을 무렵에는 ‘모든 부위’의 쇠고기로 둔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32개월 산’ 재료를 주문, 월령에 구애받지 않는 호기를 보였다고 한다. 국민적 저항을 야기한 미 쇠고기 파동은 ‘뼈 있는’ 쇠고기가 ‘모든 부위’로 바뀐 과정에 숨겨져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대미 퍼주기’를 다짐한 현 정부의 업보다. 쇠고기는 미국 측이 횡재한 기분에 작성했을 요구 리스트의 첫번째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

쇠고기 검역조건 추가협의는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점에 대한 숱한 과학적 의심들에 끝내 답하지 못하고 종료됐다. ‘말’로 내주고 ‘종지’로 받아온 꼴이다. 그럼에도 이를 계기로 ‘FTA 연내 통과’라는 돌격 신호가 나올 참이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굴복은 해도 승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쇠고기 없으면 FTA 없다”는 미국의 으름장에는 쉽게 굴복하면서도 그많은 촛불이 염원하고 있는 재협상 요구에는 끝내 불복했다. 이대로 고시를 강행한다면 이 정부 임기 동안 국민은 ‘수상한’ 쇠고기를 먹게 된다. 문제는 FTA만 되면 대한민국 경제가 비약할 것이라는 가정을 끌어안고 또 다른 위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다.

워싱턴 관가와 의회 주변은 물론, 재계에서조차 “자동차 규정을 손보지 않는 한 미국 의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상식이 되고 있다. 쇠고기가 우리에게 여전히 절실한 현안이듯, 자동차시장 추가개방 압력은 미국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정치적 이슈다. 올 11월 미 대선에서 한·미 FTA의 자동차 규정을 찍어서 반대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총선에서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의회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해온 무역정책을 뒤흔들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미 의회는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국회라도 먼저 통과하면 FTA 추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밀어붙이면서 쇠고기 파동의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관료는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속을 비웠다는 말은 아니다. 많은 경우 꽉 차 있다. 고위직일수록 사적 욕망을 공적 명분에 덧씌우고 있다. 주미대사관을 필두로 외교통상 라인은 ‘쇠고기가 안 풀리면 FTA는 안 된다’는 말로 쇠고기 졸속협상의 토대를 제공했다. 쇠고기를 졸속으로 내줄 경우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충언을 하지 않았던 이들은 “쇠고기 다음은 자동차”라는 진실을 숨기고 있거나 침묵하고 있다. 이들이 여전히 FTA 당위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이 재협상이건, 추가협의건 자동차 협정을 다시 고쳐야 할 진실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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