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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대북 식량지원의 정치학

by gino's 2008. 5. 12.

 

김진호 특파원



인도적 지원은 아름답다.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고, 배곯는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건넨다. 하지만 같은 인도적 지원이라도 정부의 손을 타면 많은 경우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다. 대북 식량지원을 둘러싼 북·미협상 역시 정치적 게임이다.

한반도 북녘의 식량사정이 험악해지고 있다는 말이 태평양을 건너온 것은 홍수피해가 컸던 지난해 여름이다. 미 국무부는 같은해 8월31일 성명을 통해 식량지원 관련 협의를 공개 제안했다. 이후 최근까지 협의는 겉돌았다. 단순히 식량배분 모니터링을 둘러싼 이견 탓은 아니다.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도적 대북 지원과 북핵위기를 비롯한 정치적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한 톨의 알곡이 아쉬운 북한에 대해 핵문제 해결을 서두르게 하려는 수단의 하나로 활용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한·미동맹의 '긴밀한 협의'가 작용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한국에 "대북 식량지원은 긴밀히 협의해서 하자"는 신호를 보내왔다고 한다. 말이 협의지, 보내지 말라는 말이다. 미국이 쥔 '식량 카드'의 약발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문제는 북핵 협의가 진전되면서 식량 협의 역시 진전돼야 할 시점이 왔다는 점이다. 미국이 지난주 방북 3차 협상에서 지원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된 건 이명박 정부다. 주기도 그렇고, 안주기도 그렇고 어정쩡해졌다. 뒤늦게 외교부와 통일부 관계자를 미국에 파견, 협의에 나서는 이유다. 국제 구호단체를 통한 미국의 대북지원에 숟가락을 얹거나, 최소한 미국의 지원이 한·미간 협의를 통한 지원이라고 생색을 낼 것이 분명하다.


대북지원 쌀 상태 점검 작업 (출처 : 경향DB)



그동안 남북간 인도적 지원 역시 일종의 거래였다. 쌀과 비료가 넘어가야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치러졌다. 하지만 정치적 측면과 함께 민족적 특성이 담긴 소통로이기도 했다. 지난 정권들이 인권에 앞서 생존을 먼저 챙긴 이유다. 북한의 식량난은 고질적인 현상이다. 북한 농업과 경제가 제자리를 찾기 전에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질이 나쁜 정치적 셈법은 북한 지도부의 그것이다. 식량난보다는 체제 유지에 우선순위를 두고 핵협상을 했음이 자명하다. 하지만 남한이 미국의 셈법에만 따르면, 민족적 특수성은 희미해진다.

미국은 인도적 지원에 반드시 국내정치적 셈을 더한다. '평화를 위한 식량프로그램법'에 따라 미국산 농산물을 미국 국적 선박편에 보내야 한다.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농촌 출신 의원들의 등쌀 탓이다. 내일 당장 지원을 결정해도 북한에 전달되기까지는 2~3개월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셈이 오가는 사이 북한에서는 5~6월 두달간 20만~3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좋은 벗들'의 분석이다. 한국이 다른 점은 또 있다. 같은 지원이라도 청진·원산·남포·해주 등 동·서해안과 육로로 동시다발적으로 구호식량을 살포하면 가장 효과적이다. '기아' 해결에는 지원식량의 규모보다 지원 속도가 중요하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이명박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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