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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破邪顯正

북·미 합의, 이번엔 반드시 결실 맺어야

by gino's 2012. 3. 5.
12.3.2

북한과 미국이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북·미는 지난달 23~24일 베이징 3차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그제 워싱턴과 평양에서 동시 발표했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농축활동을 임시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받기로 했고, 미국은 북한에 24만t의 영양식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영변 실험용 원자로의 불능화 여부도 확인하게 된다. 한·미가 ‘비핵화 사전조치’로 요구한 항목들을 북한이 수용함에 따라 머지않아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목전의 6자회담 재개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북·미가 9·19 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정전협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이 된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물론 북한이 ‘결실 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만 핵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한 만큼 언제라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합의문이다. 하지만 6자회담이 2008년 12월 중단된 이후 처음으로 양측이 중요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 이후 처음으로 평양과 워싱턴에서 동시 발표하는 형식을 취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두 달이 막 지난 시점에 북한이 미국과 합의를 이끌어낸 점이 주목된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한 달도 안돼 북·미 고위급회담을 재개, 같은 해 10월 제네바 합의를 이끈 과거를 연상시키는 상서로운 조짐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중요한 전환점이 되려면 북·미 모두 약속한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지난 20여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했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단시일 내에 아퀴 짓기는 쉽지 않다. 6자회담이 재개되어도 멀고 긴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서로 신뢰를 쌓아 나가지 않으면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간에 그 어떠한 신뢰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게인(Again) 1994’의 다른 측면에는 북·미회담을 어깨 너머로만 지켜보다가, 경수로 건설자금을 내놓아야 했던 김영삼 정권의 실패가 떠오른다. 남북 지도자가 공식 서명한 6·15 및 10·4 선언을 무시해 어렵사리 구축된 남북 간 신뢰를 허물어버린 이명박 정부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는 이번에 북측이 수용한 ‘비핵화 사전조치’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게 한국이라는 둥 한국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둥 자화자찬, 견강부회를 할 때가 아니다. 미국이 역성을 들어줘야 간신히 남북대화가 열릴 정도로 남북 간 상호신뢰가 거덜난 상태다. 지금이라도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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