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어제 고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 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김씨가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 등을 강압에 의해 증여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10년 시한이 지나 취소권이 소멸됐다고 판시했다. 김씨가 5·16장학회에 재산을 증여한 1962년 6월20일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취소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소권이 소멸됐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그 10년 세월의 역사적 진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향후 법리적 다툼의 여지를 남겼다. 무소불위의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밟아 재산 반환을 요구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재산을 강탈한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의 2005년 진상조사 발표와 2007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국가배상 권고에 이어 사법부까지 정수장학회 설립의 불법성과 강압성을 인정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수장학회가 강제헌납된 정치적 장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온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수장학회 측의 논리가 억지에 불과하다는 점이 법적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2007년 7월 대선후보검증청문회 당시 정수장학회가 강제헌납됐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인이 됐다고 해도 ‘정치인 박근혜’가 두번이나 유력한 대권후보로 꼽히는 것은 스스로 쌓아온 정치적 자산이 있음을 말해준다. 박 위원장이 민주화 운동 및 인권 탄압과 같은 선대의 과오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수장학회는 선대의 그늘일 뿐 아니라 박 대표 본인의 그늘이며 앞으로도 짊어지고 가야 할 부채이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2005년까지 10년간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금전적 혜택을 받았겠는가. 지난해 12월 초 정수장학회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부산일보가 박 위원장의 대권도전을 계기로 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촉구하는 기사를 게재하려 하자 사장이 직접 나서 윤전기 돌리는 것을 막은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수장학회가 이대로 존속하는 한 정수장학회와 박근혜는 서로 ‘무관하다’는 말 한마디로 떼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박 위원장이 더 이상 강제헌납 사실을 부인하고, 오불관언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법원은 물론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박 위원장의 주장대로 공익재단이다. 지금까지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할 3만8000여명의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문제는 강제헌납과 유신독재라는 태생적인 멍에다. 지금이라도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해 어두운 과거사를 정리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박정희의 딸’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