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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소동'이 노출한 한국사회의 자화상

칼럼/破邪顯正

by gino's 2012. 3. 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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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던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장 앞에서 '한국 국회대표단' 소속 국회의원들이 벌인 소동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이성, 비논리적인 흐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타깝게도 그 무대는 국제사회였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새누리당 이은재·안형환 의원은 회의장에서 떠나는 서세평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를 에워싸고 "탈북자를 탄압하면 안됩니다" "북송은 전혀 안돼요"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서 대사의 팔을 잡은 안·이 의원은 '신체적 위협'을 가했다는 이유로 유엔 경비원들에 의해 30분간 격리됐다고 한다.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을 막기 위해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하다가 실신하기도 했던 박 의원의 충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중국 정부에 대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제네바 소동은 불행히도 탈북자 문제의 해결이라는 명분과 별개로 외교적 관례를 어긴 것은 물론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박 의원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성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북한 대표단은 사과해야 하며, 유엔은 충분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에 유감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회원국 외교관들의 신변을 보호할 의무를 갖고 있는 유엔 경비원들의 제지에 대해 유감 표시를 요구한 대목에 말문이 막힌다. '인류의 보편적 인권'은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상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물리적으로 윽박지르고 한바탕 요구를 쏟아내는 식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팔레스타인 난민이나 중국의 티베트 인권탄압 등 수십년 묵은 인권사안은 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겠는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는 네편, 내편을 갈라 틀을 만들고 온갖 욕설과 비방을 동원해 억지논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조치는 지난 정부에서건, 이명박 정부에서건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한 어려운 문제다. 이를 두고 지금 당장 중국이나 북한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친북좌파로 매도하는 것이나,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고 낙인 찍는 행태 이면에는 국내 일부 세력이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빨갱이 사냥의 유전자가 스며들어 있다. 말은 거칠고, 행동은 무모하다. 20대 아마추어 예비정치인이 한 '해적기지' 발언에 곧바로 반국가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해군제독을 지냈다는 사람이 눈물이 그렁한 분노의 시선으로 종주먹을 들이대는 장면은 참으로 볼썽사납다. 탈북자 문제이건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이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해결이다. 전 국민의 어버이연합화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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