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 11일로 1년이 된다. 일본은 여전히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영원히 극복하기 어려운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본 기상청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대기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 세슘의 총량을 4경 베크렐(Bq)로 추정했다. 유출된 세슘은 땅과 바닷물에 스며들어 농작물과 가축, 해양 생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세슘의 방사선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만 30년이 걸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를 이어 방사성 물질의 피해를 겪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일본에선 현재 54기의 원전 가운데 단 2기만 가동되고 있다. 독일이 2022년까지 원전가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표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원전 축소 또는 궁극적인 폐기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추가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59%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원전 르네상스 정책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올해 말까지 원자력 기술을 100% 국산화한다면 세계 원자력 5대 강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가 나온다고 해도 경제성이 있으려면 40~50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면서 원전을 확대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시했다. 정부는 이달 말 핵안보정상회의와 함께 여는 원자력인더스트리서미트에 세계 원자력업계 관계자 등 200여명을 초청해 원전산업의 증진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 원자력발전을 성장동력으로만 바라보려는 시대착오적인 가치관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3월 말 후쿠시마 원전의 저농도 방사성 물질이 한국에 넘어올 수 있다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보고서를 폐기토록 했다는 사실이 관련자 증언으로 밝혀졌다. 당시 정부는 "편서풍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날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서 방사성 물질의 한반도 상륙 주장을 유언비어로 간주해 차단하겠다고까지 했으니 한편의 코미디극을 연출한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다음날은 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수출한 원전 기공식에 참석한 날이다. 원전 수출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국민의 눈을 속인 혐의가 농후하다. 이런 정부의 원전확대 정책을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물론 현재 수요전력의 39%를 원전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급체계를 감안할 때 한꺼번에 원전을 폐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최소한 재생·대체에너지 개발에 나서면서 궁극적으로 원전과 결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공동연구팀이 이달 초 발표한 대안 에너지 보고서는 원전을 추가 건설하지 않고도 1인당 전력 소비량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최대 21%까지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간 및 환경에 친화적이면서도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성장산업을 찾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시대에 역행하는 원전산업에만 몰입하는 것은 무능, 무모한 정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원자력 발전소는 핵무기와 다를 바 없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후쿠시마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 원전의존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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