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버락 오바마가 어제 미국 대통령으로는 10년 만에 비무장지대(DMZ)를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보니파스 기지의 미군 장병들에게 “이곳은 자유의 최전방”이라면서 “자유와 번영의 맥락에서 남북한의 차이점이 더 이상 분명하고 확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등 상식적 수준의 말만을 내놓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광명성 3호 위성 발사 발표 탓에 또 한 차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향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힌 한반도 상황에 대한 견해 역시 지금까지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북한 지도자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는 말로 요약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북한과 관련해 정책 아닌 정책으로 일관했던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미 양국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추가적인 고립과 제재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북한이 다음달 중순 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스스로 주민들의 밥그릇을 차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반도 문제는 외교적인 수사와 국제적인 압박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2002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 3주 뒤 DMZ 도라산 전망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면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한반도 안보상황이 더욱 꼬여만 가는 데는 북한에 1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어제까지 7번의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관계가 ‘매우 광범위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는 되레 후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북한의 변화만을 지켜보겠다는 양국 정상의 어제 발언은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과정이 한시라도 빨리 재개되는 것을 바라는 많은 한국민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니파스 기지에서 미군 장병들과 악수를 나누던 그 시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00일을 기렸다. 이제 ‘김정은의 북한’이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에, 한·미는 북한의 호전적 자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각각 제 길을 가고 있다. 북한이 위성을 발사할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경고대로 자국민의 곤궁함을 덜어주고 국제사회로 나올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미 역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한반도 평화를 주고받는 대타협의 기회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부시만도 못한 오바마의 DMZ 방문이었다. 입력 : 2012-03-25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