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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노출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칼럼/破邪顯正

by gino's 2012. 3. 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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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어제 끝났다. 58명의 각국 정상·정부대표·국제기구 수장들은 민간시설에서 핵폭탄으로 전용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제거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하고 불법적인 확산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 정상 선언문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년 전 워싱턴 회의에서 제안한 대로 위험한 핵물질의 유통을 막기 위한 논의가 한발 전진한 것만은 분명하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물질이 비국가행위자의 손에 들어가 테러에 이용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모임이다. 이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한국이 글로벌 이슈의 논의 현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미래의 위기는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목전의 위기를 애써 외면한 것은 이번 회의의 뚜렷한 한계다. 인류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핵테러를 예방하자는 논의를 진전시키면서 인류가 이미 여러번 목도한 핵재앙을 막기 위한 논의는 없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에 즈음해 원자력은 언젠가 대체돼야 할 위험한 에너지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결국 각국 정계·재계·학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이 퍼뜨린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환상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인류가 직면한 더욱 심각한 핵위협은 비국가행위자가 아니라 ‘국가행위자’에 의해 제기돼왔다. 냉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세계에는 여전히 4800여개의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외대 강연에서 고백했듯이 미·러 간에 진행 중인 새 전략무기감축협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더라도 미국은 1500개의 배치된 핵무기와 50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된다. 미국은 그럼에도 1996년 체결돼 157개국이 비준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미루고 있다. 핵테러의 위험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나라는 9·11테러를 겪은 미국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최대 위협인 핵안보에는 열심이면서 정작 인류 공통의 위협인 핵무기 감축에서는 거북이걸음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핵안보정상회의가 결국 기존 핵보유국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모임이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물론 핵군축과 핵비확산 및 원전 안전이 이번 회의의 의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의제가 아닌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문제는 숱한 양자, 다자 접촉에서 거론됐다. 58명의 국가정상 및 정부대표, 국제기구 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핵재앙의 공포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인류의 권리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은 핵안보정상회의가 지닌 태생적인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서울 회의는 여기에 각국 원전 마피아들의 또 다른 기득권을 확인시켜주었다. 부대행사로 열린 원자력 업계회의(인더스트리서밋)는 공동합의문에 ‘신규 원자력시설 도입국의 요청이 있는 경우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고 명시해 사실상 원전 프로모션을 선언했다. 그나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이 전한 경험담은 경청할 만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 “현 상태에서 원전의 신·증설은 곤란하다”면서 특히 “규제당국은 법령에 근거해 원전 사업자를 철저히 감독하면서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고리원전 완전정전 사고를 은폐했던 한국의 원전 마피아들과 ‘원자력 수출 3대강국’을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가 새겨들을 말이다. 입력 : 2012-03-27 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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