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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 실패” 반성문 쓰는 ‘주식회사 미국’

세계 읽기/좋은 미국, 나쁜 미국

by gino's 2012. 7. 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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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 실패” 반성문 쓰는 ‘주식회사 미국’

ㆍ30년 ‘보수주의 혁명’ 저물고 새 연대기 출발점

미국의 ‘국가 브랜드’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 44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극히 미국적인 이슈들이 대선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백악관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은 미국인뿐이 아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월가 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데서 입증됐듯이 미 행정부의 정책은 국경을 넘어 변화를 초래한다. 미국의 세계화, 세계의 미국화 관성이 강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백 평등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에 간 지 40년 만에 사상 첫 흑인 대통령 후보의 탄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역사적 의미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좁게는 미국이, 넓게는 세계가 보다 큰 역사의 전환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8년 임기를 마감하는 것은 부수적인 의미일 뿐이다.

1980년 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열고 94년 공화당의 상·하원 장악으로 절정에 달했던 ‘보수주의 혁명’은 30년 만에 완연한 석양에 접어들었다. 그리 아름답지 않은 석양이다. 이미 2006년 중간선거에서 12년 만에 의회권력을 민주당에 넘겼던 공화당은 이번 대선·총선으로 백악관마저 넘겨줄 위기에 처했다. 금융의 세계화로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월가는 지난 달 백기를 들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호소하고 나섰다. 오랫동안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케인스 경제학이 볕을 쬐고 있다.

‘필수불가결한 나라’ ‘극초강대국(Hyper Power)’으로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은 상품과 금융의 세계화에 취했던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방향타를 찾아 나섰다. 이번 대선은 그 조타수를 선택하는 절차로 성격이 변했다. 지난 30년 간 미국의 외형을 키워온 세계화의 논리가 역으로 미국의 내실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미국이 세계화의 폐단에 눈을 돌렸어야 할 시점에 대권을 잡은 부시 행정부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위태롭게 번영을 구가하던 월가에 돈벼락을 안겼다. 감세안을 확대하면서 기업은 재미를 봤지만 재정은 멍이 들었으며, 규제를 더 풀면서 월가는 더 많은 자유를 구가했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은 줄었다.

시장근본주의에 중독된 미국에 처음 경고음을 울린 것은 2006년 11월 중간선거였다. 선거판의 가장 큰 이슈는 당시 악화일로를 걷던 이라크 정책으로 집중됐다. 하지만 결과는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그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임을 입증케 했다. 하원 41명, 상원 9명의 민주당 새내기 의원들이 의사당에 입성했다. 민주당 주도 의회는 최저임금 인상, 메디케어(65세이상 노인 의보) 약값 인하 등의 민생현안에 손을 댔지만 미완에 그쳤다.

세계화 진영 내부에서부터 반성이 잇따른 것은 이 즈음부터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해 2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연설을 통해 “지난 30년 간 양극화로 미국 경제의 엔진인 역동성이 위기에 처했다”면서 미국식 세계화가 벽에 부딪혔음을 인정했다. 그는 경제적 기회의 평등과 세계화의 패자들에 대한 배려를 제안했다. 하지만 정작 세계화의 승자들을 손봐야 할 필요성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지난 해 8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는데도 부시 행정부는 근본적으로 방향을 수정하지 못했다. 세계화의 관성대로 각국 금융기관으로 위험을 분산하며 위기를 키웠다.

결국 재임중 연방기금금리를 1%로 낮추면서 월가의 파생금융상품을 ‘기술혁신’이라고 치켜세우고 보통사람들의 주택구입을 부추긴 팔순의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반성문을 써야 했다. 레이거노믹스에 열광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최근 “레이건 혁명은 복지국가의 과도한 재정지출에 대한 실용적인 대안 수준을 넘어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길을 잃었다”면서 ‘주식회사 미국’의 몰락을 선언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경제위기는 11월4일 결정될 차기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가장 먼저,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감당해야 할 과제가 됐다. 당장 11일 뒤 열리는 선진20개국(G20) 정상회담에 참석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의 세계화가 어떠한 형태의 변화를 추구해나갈지는 미지수다. 오바마도 매케인도 아직 명쾌한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또 다른 연대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에 이번 대선의 의미가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투표권은 미국민에게만 있는 선거, 그 결과가 주목된다.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입력 : 2008-10-24 18:01:42수정 : 2008-10-24 18: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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