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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는 수백만달러에서 수천만달러의 재산을 갖고 있는 백만장자들이 여유와 풍요를 만끽하는 대신 고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5일 전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행운이 겹쳐 일확천금을 거머쥐었지만 더 큰 부자를 부러워 하며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일컬어 신문은 ‘노동하는 백만장자(working-class millionaires)’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미 국민 1%에 해당하는 1000만달러(약 93억원)의 재산을 가진 데이트중개 사이트 매치닷컴의 창업주 개리 그레먼(43)은 매주 80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1996년 창업한 온라인 교육회사의 기업가치가 5000만달러에 달하는 움베르토 밀레티는 한해 500만달러의 수입을 챙기지만 역시 한 주 60~70시간을 일한다.
미국 사회 성공모델로 꼽히는 실리콘밸리의 백만장자들을 강도 높은 노동으로 몰아 넣는 동기는 무엇보다 상대적인 빈곤감 때문이다. 은행에 200만달러를 넣어놓고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갖춘 130만달러 가치의 집에서 사는 홀 스테거(51)는 “밖에서 보면 이상하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수백만달러의 재산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 매달 돌아오는 온갖 고지서를 걱정해야할 형편은 아니다. 여전히 인생에서 많은 성공의 기회를 갖고 있고 대개 일을 즐긴다. 그럼에도 소금광산에서 일하는 인부만큼이나 지긋지긋한 일터에 매여 있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실리콘밸리의 부자클럽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적지않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주민들의 지난해 평균소득은 4만6920달러로 미국민 전체 평균인 3만400달러보다 높다. 하지만 평균 21만2300달러인 미국인의 집 값이 실리콘밸리에서는 78만800달러로 4배에 가깝다. 심리상담비용, 가족, 친지들은 물론 각종 자선단체의 기부요청 등 부자들만이 겪는 ‘준조세’ 부담도 만만찮다.
일과 온갖 지출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진짜 부자가 되려면 최소 10억달러가 넘어야 한다는 게 실리콘밸리의 상식이다. 밀레티는 실리콘밸리의 딱한 백만장자들의 삶을 두고 “종점이 없는 마라톤과 같다”면서 “상위 1%의 부자들은 그중 상위 10분의 1%가 되려고 하고, 다시 100분의 1%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working poor)’와 함께 미국식 자본주의의 또 다른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