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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亡者)에 대한 예의

칼럼/여적

by gino's 2012. 6. 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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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바로 옆으로 휙 지나갔다. 내 평생 이리 겁먹은적은 없다." "오늘 전투 뒤 35명이던 우리 소대는 19명으로 줄었다. 우리가 치른 피투성이 전투는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주 베트남을 방문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과 풍꽝타인 베트남 국방장관이 서로 교환한 베트남전 전몰장병들의 편지와 일기장은 50여년 전 전장의 지옥도를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전장에 내던져진 병사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떠한 전쟁의 명분도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는 사라진다. 전쟁의 광기 속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고독한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공포와 고독에 휩싸이다가 숨진 전몰장병이 죽어서도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컴컴한 땅속에 홀로 구겨져 있게 방치한다면, 이는 망자(亡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없는 나라임을 만세상에 천명하는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55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미국은 그리 낯선땅 베트남에서 스러져간 미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찾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유해가 1300여구에 이른다고 한다. 베트남은 이번에 3개 지역을 미군유해발굴팀에 추가 개방했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은 해당지역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4구의 유해들의 신상 및 사망, 실종경위를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군은 연병력 32만4864명이 참전, 5099명이 전사·사망·순직했지만 실종자는 단 4명에 불과하다. 비정규전 중심의 전쟁이었기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한국전쟁과 다르다 하더라도 기네스북에라도 오를 만큼 실종자가 적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아직까지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유해를 단 1구도 발굴한 적이 없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과 협의해 1990년부터 2005년까지 220여구의 미군 유해를 수습했다. 그 중 12구가 미국 측의 유전자 감식 결과 미군에 배속됐던 국군 유해로 판명돼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방부는 종전 47년이 지난, 2000년부터 남한 내 국군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했지만 지금까지 전사자의 5%(6492구)만 발굴했다. 나머지는 어느 산야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베트남전 전몰장병 유해찾기는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북·미는 산 자들의 관계 개선에 앞서 망자들의 유해 발굴부터 시작한 경우다. 남과 북은 2007년 국방장관회담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공동발굴키로 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국군 유해 4만2000여구가 북한 지역 및 비무장지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녘에 묻힌 인민군 전몰장병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남과 북의 모든 전몰장병에게 뒤늦게나마 가족과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녘의 국군 유해 찾기를 통일 뒤로 미뤘다. 참으로 한가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지키지 못해온 남과 북의 역대 정권에 합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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