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제목 : 영어 격차
유치원생부터 영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나라. 대학생은 전공을 뒷전으로 미루고 영어공부에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나라. 그런 영어학습에도 양극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그제 내놓은 ‘영어교육 투자의 형평성과 효율성’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소득에 따라 영어 사교육 노출비율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월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의 학생은 영어 사교육 참여율이 20% 수준이지만, 5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은 70%였다. 서울 강남권은 영어유치원 참여비율이 24.6%인 반면에 비강남권은 1.1%에 불과했다. 영어캠프 및 영어전문학원 참여비율의 격차는 물론 도·농 간 영어성적 격차도 두드러졌다.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위치한 NLCS 제주에서 공부하는 교사와 학생들 l 출처:경향DB
불평등구조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토익 점수 및 연봉 격차로 이어졌다. 부모 소득 100만원당 수능 영어 점수 백분율이 2.9계단 상승해 국어(2.2계단), 수학(1.9계단)을 앞질렀다. 소득 100만원당 토익 점수는 16점 차이가 났다. 또 토익 점수 100점이 높으면 연봉이 170만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영어성적에 따라 임금 프리미엄이 나타났지만, 영어능력이 업무 생산성으로 연결됐다기보다 다른 자질 덕이라고 분석했다. 중요한 것은 부모 소득의 격차에서 비롯된 불평등한 영어학습 기회가 또 다른 소득격차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모두가 영어 능통자일 필요는 없다. 모두가 ‘묻지마 영어’ 열풍에 휩싸인 것 같지만 정작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제한적인 게 ‘영어공화국’의 패러독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음미할 대목이 적지 않은 연구결과다.
보고서는 저소득층 및 낙후지역 학생들에게 방과후 영어교실과 방학 중 영어캠프 확대, 교사의 역량과 수업여건 개선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공교육이 개선되거나, 된다는 전망이 보였다면 전체 초·중·고생 사교육비의 3분의 1이 영어학습에 쏠리는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울 금천구가 지난해부터 하고 있는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지자체가 강의공간 및 셔틀버스 등 하드웨어를 제공해 비용을 대폭 낮추고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검증된 원어민강사와 효율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