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지난 주말 폐막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갈수록 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을 재확인하게 했다. 아세안은 친중·친미로 갈렸다. 회의 결과를 담은 의장성명은 중국 측의 입장을 고려해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요구한 영유권 분쟁의 기본원칙을 담은 행동수칙을 명시하지 않았다. 동시에 필리핀과 베트남 등의 입장을 수용해 무력사용을 금하기로 하는 내용을 포함시켜 갈등을 봉합하는 데 그쳤다.
동아시아 해양분쟁의 한 축은 중국이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황옌다오(필리핀명 스카보로섬), 베트남 등과는 난사군도(스프래틀리군도), 시사군도(파라셀군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동중국해에서는 중·일 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이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과 베트남, 일본 등 중국과의 영토분쟁 당사국들은 미국의 우산 밑에 집결하고 있어 사실상 미·중 갈등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회의 참석 전 일본·몽골·베트남·라오스 등 중국 주변 국가들을 의도적으로 방문, 강력한 개입 의지를 내보였다. 미국은 중국과 맞서는 동남아 국가들의 역성을 들어주면서 ‘태평양 국가’로 복귀하는 동시에 동남아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경제적, 외교적, 안보적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는 동·남중국해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에서도 미국의 아시아 복귀 또는 지역 재편구도가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3국 장관들은 실무급 운영그룹을 워싱턴에 설치키로 합의했다. 지난달 워싱턴 한·미 외교·국방장관(2+2)회의에서 강화하기로 한 3각 안보협력을 처음 제도화한 것이다. 3국 장관들은 공동발표문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을 공동의 위협으로 한껏 강조했지만,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맞아떨어질 뿐이다. 중국의 반발로 이어져 서해상의 긴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번 회의 결과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자적 지위를 활용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도모해야 할 시대적 소임을 미룬 채 미국만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외눈박이 외교안보 정책이 남긴 또 하나의 잘못된 족적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 파탄에 이어 동아시아 신냉전구도에 일조를 해왔다. 군사대국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불발된 것을 여전히 아쉬워하고 있다. 누가 되건 19대 대통령이 물려받게 될 부(負)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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