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과 체결 직전에 전격 중단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사태의 후폭풍이 확대되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의도와 달리 국민적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사과문 한장 덜렁 내놓았을 뿐이고, 외교통상부는 원래 국방부 사안인데 얼떨결에 덤터기를 쓰게 됐다는 볼멘소리를 흘리고 있다. 지난해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 이후 이번 협정을 추진해온 국방부는 마지막 협정 체결단계에서 발을 빼고 있다. 너나없이 뒤늦게 절차적인 결함을 인정하는 데 그치고 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어제 과정상의 소홀한 점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했다. 협정을 막후에서 총지휘해온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은 소나기를 피할 요량인지 아예 입을 닫고 있다. 여론수렴 따위는 부수적인 절차인 양 귀찮아하면서 깊은 사고 없이 일을 저질러놓고, 막상 국민적 반발에 직면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이명박 정부의 무소통·무책임·무철학의 3무(無) 본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및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에서 범한 숱한 반인도적 범죄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는 데다, 많은 한국민이 가상적국으로 여기는 일본과 군사협력을 하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협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한 것은 한·일 관계의 특수성과 국민적 반감을 고려하면서 절차적 완성도를 높이라는 지적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협정 자체보다는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는 미·일의 전략적 이해에 끼어들어 한반도 방위를 아웃소싱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사고방식이 안고 있는 인화성이 더 큰 문제다. 총리실은 이번 협정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미·일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3국간 군사협력은 기실 중국을 감시하고 압박하려는 미국 세계전략의 하부구조이다. 필연적으로 중국의 잠재적인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한·미 외교·국방장관들이 지난달 2+2회담에서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시스템 구축에 합의한 것이나,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 검토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민감한 안보상황에 미국과 일본, 중국까지 끌어들여 한반도의 위기지수를 높이는 꼴이다.
한·일 군사협력으로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게 더 많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임기 내내 위기관리를 하기는커녕 위기를 높이는 쪽으로만 성과를 보여왔다. 차제에 이번 협정을 미련없이 폐기하고 남은 임기만이라도 한반도 평화방정식을 푸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전에 우리 안보에 이처럼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협정을 기습통과하려 했던 장본인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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