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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좋은 미국, 나쁜 미국

[세계의 창]‘포카혼타스 전설’의 고향

by gino's 2012. 8. 4.

제임스타운의 역사가 외면당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숱한 전설로 확대 재생산돼 온 것이 바로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 이야기다. 디즈니 만화영화로도 소개된 포카혼타스의 이야기는 사실과 상상력의 합작품이다.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정착촌에 세워져 있는 포카혼타스(왼쪽)와 존 스미스의 동상.

 

영국인 정착민들에게 식량을 날라다 주곤 했던 천사, 제임스타운 지도자 캡틴 존 스미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 정착민과 인디언 간에 평화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 인디언 가운데 최초의 기독교 개종자이자 영국 신민이 됐던 그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게 미 역사학계의 지적이다.

정착 초기인 1607년 말, 먹을 것을 찾아 제임스강을 탐사하던 스미스는 인디언들에게 잡혀 포하탄 추장에게 끌려간다. 포하탄 추장은 단순한 부족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당시 버지니아 지역을 호령하던 인디언 부족연합의 지도자로 제왕적 권위를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사형에 처해지기 직전의 스미스가 당시 11~12세였던 포카혼타스의 청으로 살아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포한타 추장이 실제로 딸의 부탁을 들어 살려준 것인지, 구명 자체가 인디언들의 전통에 따른 의식의 일부였는지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포카혼타스의 원래 이름은 마토아카(작은 눈(雪)의 깃털)이었다. 장난기 많은 그를 특히 귀여워했던 포한타가 ‘포카혼타스(작은 장난꾸러기)’라고 고쳐 불렀다. 영국인이 된 뒤에는 ‘레베카 부인’으로 개명했다.

포카혼타스와 당시 27세였던 스미스는 연인관계가 아니었다. 나이를 초월한 친구였다. 이후 제임스타운에 식량을 들고 종종 찾아왔던 포카혼타스는 정착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인디언 추장의 딸로 귀한 존재였다. 스미스는 그와의 인연 덕에 인디언과의 교섭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제임스타운의 지도자가 됐다. 스미스가 중병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간 뒤 정착민들은 포카혼타스에게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주민들은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벌이던 1613년 포카혼타스를 납치했다. 포로생활을 하던 중 포카혼타스는 정착민 존 롤프와 결혼을 하고 개종을 했다. 덕분에 제임스타운과 인디언들 간에 평화가 이뤄졌다. 제임스타운이 담배 재배로 번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담배농장주였던 롤프와 포카혼타스는 3년 뒤 어린 아들(토마스)과 함께 영국을 방문했다.

대우는 극진했다. 런던에서 포카혼타스와 재회한 스미스는 제임스1세의 앤 왕비에게 보낸 서한에서 포카혼타스를 왕족으로 대우해줄 것을 청했다. 개종을 하고 레베카 부인이 된 포카혼타스는 런던에서 중병에 걸려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1617년 눈을 감은 그의 묘지는 아직도 테임즈강변에 있다. 포카혼타스는 여전히 영국과 미국, 인디언들 사이에 평화의 상징이자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후 인디언 여성들이 살아온 길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최근 보호구역에 거주하는 인디언 여성들은 3명에 1명 꼴로 성폭행을 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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