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대선을 잠깐 잠깐 보면서, 4년전 대선 당시 현장취재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대선은 미국 사회를 해독할 수 있는 훌륭한 창문이다. 선거 때마다 현안의 우선순위는 달라지지만, 결국 총(총기소지 자유), 균(의료시스템), 쇠(제조업), 신(종교), 색(인종)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미국은 별로 변하지 않는 나라인 것 같다.
선거때마다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culture factor(젠더, 동성애, 낙태)는 신(십자가와 문화전쟁)에 포함시킬 수있을 것 같다. 2018년 벽두부터 불거진 #me too 열풍으로 '성(젠더)' 문제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최근에 주목을 끄는 이민문제는 '색'에 포함해도 무방할 것 같다.
2년 가까이 마라톤 유세를 벌여온 미국 대선이 28일 현재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금융위기에 힘입어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강세가 완연하다. 하지만 평범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 드는 이슈는 거대 담론이 아니다. 총기 소유와 의료보험 개혁, 지구 온난화, 종교적 가치, 인종 등이 선택의 잣대가 된다. 총·균·쇠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 대선의 이면을 전한다. ‘총·균·쇠’는 제러드 다이아몬드 미 UCLA 교수가 총기와 병균과 금속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명저에서 따온 것이다.
NRA저주’에 오바마 충성맹세NRA저주’에 오바마 충성맹세
ㆍ회원만 450만 자금력 바탕 입김
ㆍ평생회원 페일린 ‘A급 정치인’
“한밤중에 괴한이 집에 침입해 겁에 질린 당신의 아이가 울고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당신은 총을 꺼내 가족을
지켰을 뿐입니다. 오바마는 그런 당신을 범죄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전미총기협회(NRA)가 최근 미국 일부 지역에서 방영하고 있는 TV광고물이다. ‘이매진’이라고 이름 붙인 시리즈 광고는 실제 상황을 토대로 오바마의 당선으로 총기소유의 자유가 제한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퍼뜨리고 있다. 본부가 있는 버지니아를 비롯해 콜로라도·플로리다·미네소타·미주리·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등 이번 대선의 승패가 걸린 스윙주(경합주)를 중심으로 선거 임박해서까지 방영할 계획이다.
정규회원 430만명의 NRA는 지난 9일 존 매케인·세라 페일린의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뒤 전국적인 조직망과 자금력을 토대로 올 대선에 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 이미 230만달러의 자금을 투입, 매케인을 지지하고 있다. NRA의 선거개입은 종종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엄격한 총기규제론자였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선거인단 5명 차이로 아깝게 패배한 2000년 대선에서 승부를 가른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매케인은 NRA의 정치인 선호도 등급에서 중간수준의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의정활동을 통해 총기판매상들이 구매자의 신원을 확인토록 하는 법안을 지지한 전력으로 괘씸죄를 받아온 터다. 그런 그가 NRA의 엄호를 받게 된 것은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덕에 넝쿨채 굴러들어온 행운이다.
NRA는 평생회원인 페일린을 ‘A급 정치인’으로 분류, 이미 2006년 알래스카 주지사 선거에서부터 적극 후원해왔다. 매케인과 페일린의 유세장마다 지원사격을 하고 있는 건 물론이다. 26일 오하이오주 남서부 유세에 나선 매케인 캠프에는 NRA 전 회장이자 평생 이사인 샌디 프롬맨이 따라붙었다.
오바마는 고어 전 부통령을 낙마시킨 ‘NRA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지난달 버지니아주 유세에서 “나는 당신의 샷건도, 소총도, 권총도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하는 등 기회있을 때마다 충성맹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NRA는 오바마가 총기소유의 자유를 지지하면서도 주정부 단위에서 엄격한 제한을 두는 법안에 찬성했던 이력을 빌미로 기피인물로 규정하고 있다.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 총과 국가는 동전과 양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화당이 지난달 초 세인트 폴 전당대회의 주제를 ‘국가 우선(Country First)’으로 잡은 것과도 무관치 않다. NRA에 대한 폭넓은 지지 역시 연방정부로부터 최대한의 개인의 자유를 구가하려는 미국 건국 초기 정신과 맥이 닿아 있다. 총과 국가에 대한 보수의 열광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줄 것인가는 이번 대선의 숨은 관전 포인트다.
[키워드로 본 대선] 2. 의료보험
미국 의보 무가입자 4570만명…의료 공약이 경합주 승패 갈라
CNN방송의 지난 달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보개혁이 13%로 경제위기(58%) 다음으로 높은 주목을 받았다. 공화당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비율이다. 하지만 투표의 집중도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외교안보 이슈가 보통사람들에게 강 건너 불인 반면에 의보개혁은 발등의 불이어서다.
[키워드로 본 美 대선] 3. 쇠와 일자리
ㆍ실업자 넘치는 ‘철강지대’ 고용 창출이 당선 가늠자
러스트 벨트는 선거철이 돌아오면 새삼 중앙정치의 주목을 받는다. 기간산업 지원의 목적도 있지만 미 의회가 포드·GM·크라이슬러 등 미시간주 자동차 빅3 업체에 250억달러의 저리 융자를 결정한 것도 선거철과 무관치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대 논리로 한국 자동차시장의 추가 개방을 요구해온 오바마는 융자 규모를 500억달러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진영은 투표 전 마지막 주에 접어들면서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 유세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오하이오는 지난 11번의 선거에서 대선 승자를 정확하게 가려내 미국 대선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린다. 오바마는 여론조사상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확실한 우세를, 오하이오에서는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남침례교회 목사 출신인 마이크 허커비와 모르몬교 신자인 미트 롬니의 선전으로 종교 문제가 반짝 이슈화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지난 8월 복음주의 지도자 릭 워렌 목사가 오바마와 매케인을 자신의 새들백 교회에 초청해 포럼을 개최하는 이벤트가 있었을 뿐이다.
뒤늦게 다시 종교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다. 페일린은 지난 22일 복음주의 지도자 제임스 돕슨과 면담한 뒤 “11월4일 선거 결과는 신의 손에 달렸다”고 선언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막내아들을 출산하고 17세 여고생 신분으로 임신한 딸의 결혼을 허락한 페일린은 생명 옹호론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레이건과 부시의 ‘종교 정치’가 일시적으로나마 종말을 고할지는 올 대선의 성격을 규정지을 중요한 지표다.
ㆍ<키워드로 본 대선 5> 영원한 원죄 ‘인종’
첫 흑인대통령 탄생해도 흑백차별 종식 ‘시작’일 뿐
최근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오바마 암살 기도가 적발됐듯이 인종 문제는 유령처럼 선거판을 배회하고 있다.
지난달 스탠퍼드대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다가도 투표장에선 백인 후보를 지지하는 ‘브래들리 효과’ 탓에 오바마가 실제 선거에서 6%의 표를 잃을 것으로 조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7년 발생한 ‘증오 범죄’ 7600여건의 범행 동기 가운데 인종 문제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오바마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의 짧은 여정은 미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케 한다.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 후보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흑인 표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쏟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엘리트인 오바마에 대해 “충분히 검지 않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한 표가 아쉬운 오바마는 흑인 사회에 추파를 던지는 대신 되레 “미국이 감기에 걸렸다면 우리(흑인 사회)는 폐렴에 걸렸다”(2007년 5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고 비판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거물 힐러리를 제친 직후인 지난 1월14일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서도 흑인 응답자의 47%는 여전히 흑인 대통령 탄생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대선 조기투표장에 달려나온 흑인들의 80~90%는 오바마에게 표를 선사하고 있다. 10개월 사이 싸늘한 회의에서 뜨거운 열광으로 변한 것이다.
오바마가 당선된다고 해서 미국이 흑백 차별의 역사를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오바마 스스로도 ‘링컨을 잇는 역사적 연설’로 평가받은 지난 3월 ‘인종 연설’에서 “나는 단 한 번의 선거와 단 한 명의 후보, 특히 나처럼 완벽하지 못한 후보 한 명으로 우리가 인종 차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독립 232년 만에 흑백 차별의 역사를 끝내는 출발선에 서게 될 것으로 미국 언론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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