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논설위원
“나는 어떠한 교회의 독트린도 결코 대통령의 직무와 법의 권위 위에 놓지 않겠다.” 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경선을 코앞에 둔 2007년 12월6일 모르몬 교도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새삼 정·교분리 선언을 해야 했다. “모르몬은 안된다”는 주류사회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미국에서의 신앙’이 연설의 주제였다.
평범한 유권자들이 롬니를 보면서 떠올리는 것은 주지사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모펀드 회장으로서의 성공한 경력도, 공약도 아니었다. 그즈음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응답자 4명 중 1명이 “모르몬 교도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할 정도로 모르몬은 세속정치인 롬니에게 주홍글씨였다. 롬니의 연설은 1960년 대선정국에서 ‘내가 믿는 미국’ 연설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호소했던 존 F 케네디를 연상시키면서 적잖은 반향을 불러왔지만, 대세를 뒤엎지는 못했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경향신문DB)
기독교 문화권에서 미국만큼 종교가 대선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드물다. 특히 공화당의 종교정치는 로널드 레이건이 1980년 대선에서 “언덕 위에 빛나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17세기 청교도 정치인 존 윈트롭의 말을 인용한 유세연설로 재미를 보면서 확산일로를 걸어왔다. 십자군전쟁을 벌이듯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절정을 이뤘다. 부시가 재선한 2004년 대선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은 ‘경제·일자리’(20%)나 ‘테러와의 전쟁’(19%)이 아니라 종교와 관련된 ‘도덕적 가치’(22%)였다.
그런 미국 정치에서도 종교의 위세가 떨어지고 있는 듯하다. 롬니가 엊그제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권도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번에는 모르몬 신앙을 둘러싼 논란의 약발이 다소 떨어진 듯하다. 퓨리서치센터·워싱턴포스트가 지난 26~29일 미국인 1000명에게 ‘롬니 하면 떠오르는 한마디’를 물은 결과 ‘모르몬 교도’라는 응답은 8개에 그쳤다. 지난해 10월(60개)과 올 3월(18개)에 비해 급속도로 떨어진 것이다. 미국인들이 갑자기 종교적 관용에 눈을 뜬 것일까. 아닐 것이다. 월가의 탐욕이 빚은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특유의 개신교 DNA까지 엷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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