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어로 ‘상서로움’ ‘행복’ 등 좋은 뜻을 갖고 있는 스와스티카(하켄크로이츠)가 악마의 상징으로 돌변한 것은 독일 나치당이 상징으로 채택하면서부터다. 수많은 홀로코스트의 현장에서 나부꼈다. 전후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스와스티카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뜻하는 욱일승천기(旭日旗) 역시 황군이 깃발로 사용하면서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천인공노할 기억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스와스티카와 사뭇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일제의 패망과 동시에 한동안 사용이 금지됐지만, 1952년 해상자위대에 이어 육상자위대도 욱일기를 군기로 쓰고 있다. 깃발은 군의 정신이자 사수해야 할 가치다. 한국과 군사협력을 하자는 일본 자위대가 황군의 정신을 승계하고 있는 것이다.
욱일기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지난달 런던올림픽 경기장에 버젓이 등장하더니, 엊그제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한·일전이 열린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다시 펄럭였다. 일본축구협회가 경기장 반입을 허용한 탓이다.
일본 팬이 여자 월드컵 한·일전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들며 응원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정부와 대한체육회, 대한축구협회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는 가운데 이번에도 민초들이 들고일어났다. 뉴욕 동포들이 ‘일본 전범기(戰犯旗) 퇴출을 위한 시민모임’을 결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면서 범세계적인 캠페인에 돌입했다. 평범한 미국인 패터슨은 최근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욱일기를 스와스티카와 동일시하면서 올림픽 경기장에서 퇴출시킬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욱일기 퇴출운동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우선 국내의 모든 출판·영상물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공공장소에서 욱일기를 소지한 사람을 엄벌하는 법안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폴란드 정부는 스와스티카를 공공장소에서 내보일 경우 최고 징역 8년형에 처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집시와 함께 수많은 동포들이 스러져간 과거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내에서조차 욱일기 사용·소지를 범죄로 다스리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것은 순서가 틀리다. 여의도에서 밥벌이를 하는 금배지들이 모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