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 논설위원
“세상에 나의 영웅 조지 W 부시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누군가 꼬집어주든지, 내 얼굴에 총을 쏴주길….” 2006년 4월 워싱턴 힐튼호텔의 대형 연회장.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연례 만찬에 초청연사로 나선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의 연설은 미국식 정치풍자의 진수를 보여준 다. 부시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듯하더니, 돌연 행사 직전 사냥을 갔다가 친구를 쏜 딕 체니 부통령을 꼬집었다.
콜베어는 연단 바로 옆좌석의 부시를 가리키며 “이 사람의 지지율이 32%밖에 안된다고들 하지만, 대통령은 잔의 절반이 비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시길. 32%는 잔의 (절반이 아니라) 3분의 2가 비었다는 말이니까…”라고 말해 부시를 머쓱하게 하더니, “폭스뉴스는 (공정하게) 양면을 다 보여준다. 대통령의 측면과 부통령의 측면 말이다”라면서 총구를 우파 폭스뉴스에 돌렸다. “나는 가장 조금 다스리는 정부가 최고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세운 것은 환상적인 정부”라는 한마디로 이라크의 허수아비 정부와 공화당의 작은 정부론을 동시에 때렸다.
미국의 풍자문화는 종종 잔인하다. 하지만 아무리 속이 쓰리더라도 유일한 반격 수단은 또 다른 유머와 풍자만이 허용되는 게임이다. 이날 콜베어의 독설은 특히 정도가 심해 부시의 측근 몇 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눈에 띄게 얼굴이 달아오른 부시는 끝까지 웃으며 자리를 지켰다.
(경향신문DB)
올 11월 대선·총선을 앞둔 미국에서 팔순의 영화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 연설이 화제가 됐다. 지난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투명인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앉은 것을 가정해 연단 옆의 빈 의자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공약 이행이 안된 것을 한껏 조롱했다. 재미 있는 것은 오바마 캠프의 반격이다. 공식 트위터에 ‘대통령’이라고 적힌 의자 사진을 올려놓고 “이 의자엔 이미 주인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오바마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그의 열렬한 팬”이라며 “(정치인이) 쉽게 화를 낸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여유를 보였다. 미국 대선판의 공기 역시 맑지 않다. 거짓 이미지와 그럴듯한 약속, 근거 희박한 상대방 공격이 난무한다. 하지만 특유의 풍자문화가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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