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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의 대북 구상에서 빠진 것

칼럼/경향의 눈

by gino's 2012. 10. 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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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논설위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은 2002년 5월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 창당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두 사람은 속기사만 앉혀 놓고 1시간 동안 독대를 했다. 박 후보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 약속한 부분에 대해 지킬 것을 지키려 노력한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평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열쇳말로 제시하고 있다. 7·4 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 역대 정권의 남북 합의가 기본적으로 다 지켜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평소 신뢰와 원칙을 중시해온 생활철학에서 나온 견해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박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염두에 뒀다면 지난해 말 김 위원장 사망 당시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박 후보는 국회 차원의 조문단 구성을 끝내 거부했다. 평화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뚜렷한 입장도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상호주의 원칙론을 강조했던 박 후보가 기존 남북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상당한 진전이다.



북측 바라보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경향신문DB)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4일 발표한 ‘한반도 평화 구상’은 경제·평화·안보를 육지와 바다에서 낚아 올리자는 담대한 구상이다. 남북경제연합을 구축한 뒤 중국, 러시아 등을 아울러 환서해 및 환동해 경제권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낙관적 가정 위에 또 다른 낙관을 올려놓아 위태롭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10·4 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48개 사업을 차근차근 이행하겠다면서도 정작 어떻게 새누리당의 동의를 얻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생략됐다.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두 번이나 한 지금, 과거의 정책 궤도로 무난하게 복귀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 구축된 공약이다.


문 후보 스스로 지적했듯이 참여정부는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10·4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얻어놓지 않았다. 범야권이 정권교체를 이룬다고 해도 임기의 절반 이상을 원내 제1당인 새누리당과 꾸려가야 한다. 상황이 좋을 때도 못했던 것을 여소야대 정국에서 관철시키려면 무엇보다 새누리당과의 협력 모색이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취임 첫해에 한·중,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다짐 역시 올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수정돼야 한다. “최선의 대북정책은 강력한 경제제재”라는 소신을 피력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행정부 구성에만 반년이 필요하다. 그만큼 한·미 간 조율의 여지가 좁아진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강령은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제사회 제재’를 계속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을 목도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변했음을 말해준다.“내가 먼저 손을 내밀 테니 당신도 주먹을 펴라”던 4년 전 오바마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엊그제 7대 정책 비전의 하나로 발표한 ‘강하고 당당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는 남북관계-북핵문제-한반도 평화체제의 선순환을 통해 북방경제의 블루오션을 열겠다는 구상이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문 후보의 정책과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 향후 남북 간 중요한 합의는 국회 동의를 거쳐 법적 효력을 갖게 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안정된 기반 위에 올려놓겠다는 점이 그나마 주목된다.


다행히 세 후보 모두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선 보기 드문 수렴현상이다. 올 12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남북관계를 재건하는 작업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북한을 바라보는 남측 여론의 시선도 한결 까칠해졌다. 성급한 낙관으로 큰 걸음을 내디딘다면 자칫 허방을 짚을 수 있다. 원대한 목표를 갖되 꼭 임기 중에 굵직한 업적을 남기지 않아도 좋다는 긴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남긴 유일한 유산이 있다면, 남북관계에 저점을 찍으면서 보수와 진보가 상당 부분 시각을 공유할 토양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박 후보는 3년 전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미국 조야를 상대로 페리 프로세스보다 더욱 포괄적인 접근을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도, 신뢰 프로세스도 미국이 아닌 우리 안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다. 1960년대 말 서독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시작한 동방정책이 20여년 뒤 기민련의 헬무트 콜 총리 시절에 결실을 맺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선 승부와 무관하게 대북정책에 관한 한 서로 합의와 공감대의 영토를 넓혀간다면, 세 사람 모두 한반도 평화와 궁극적인 통일의 진정한 영웅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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