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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양들의 침묵

by gino's 2012. 12. 10.


김진호 | 논설위원



 

이 시대, 청춘은 위로받아 마땅하다. 청년층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먼저 희생되는 계층의 하나다. 비싼 등록금과 낮은 취업률. 고등교육을 마치고도 이 사회 어느 한 곳에 자기자리를 잡기가 어렵다. 많은 경우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품을 팔아야 한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놓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에 어깨가 축 처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들은 아시는가.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청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수많은 노인들이 이 순간에도 나홀로 지하실에서 시들어간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도 만만치 않은 업무에 치인 피곤한 30대도 있다. ‘치킨아빠’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골목마다 대기업의 횡포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40대, 50대 자영업자들로 넘쳐난다. 



젊어서 아프고, 아프니까 젊은 것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처한 사회, 경제, 정치적 현실이 다를지언정 지구촌 청년들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어느 나라에서나 청년들이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미국 청년들에게 현실은 더욱 가파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았던 지난달 미국 대선에서 거뜬하게 재선한 배경에는 아픈 그들이 있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세 중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미국 언론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특히 청년층의 투표율이 떨어질 것을 점쳤다. 지난 4년간 9%를 웃도는 경기침체 국면에서 정치 참여 열기가 달아오르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터프츠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18~29세 사이의 청년 유권자 2300만명이 투표장에 나왔다. 세기의 선거였던 4년 전과 마찬가지로 50%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전체 유권자의 19%에 달하는 규모다. 오바마는 청년층에서 60%를 웃도는 지지를 얻어 공화당의 미트 롬니를 눌렀다. 대학생 투표율은 63%에 달했다. 전체 투표율이 60%를 약간 상회한 것을 감안하면 청년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와 압도적인 지지가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일종의 거래다.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의 권익을 먼저 챙기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들은 지난 4년간 매년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는 방식으로 재정난에 대처해왔다. 보건의료 개혁과 연방정부 적자 등 산적한 현안에 밀렸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뽑아준 청년층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지난해 학자금 대출 상환 조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교육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올해 연두교서에서는 “대학 당국이 학비 인상을 막지 않는다면 연방정부 지원예산도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년층의 오바마 지지가 이어진 것은 2008년 대선 이후 오바마의 약속 이행노력을 평가하고, 향후 개선될 것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덕분일 게다. 지지 없이 배려 없고, 배려 없이 지지 없는 선거의 공정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오는 19일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청년층의 투표율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전망은 절망적이다. 20대 투표율은 의회권력의 교체가 예상되던 지난 4·11 총선에서 39.5~40.4%에 불과했다. 17대 대선 때도 46.6%에 머물렀다. 총선이나 대선은 고사하고 올 들어 대학마다 학생들의 저조한 투표율 탓에 학생회장 선거가 연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마저 속출하고 있다. 모두가 등록금 인하를 원하면서도 이 엄동에 밖에 나와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청년은 극소수다. 



물론 기성정치권의 책임이 적지 않다. 2007년 대선국면에서 ‘등록금 절반 인하’의 의지를 내비쳤던 이명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야권에도 청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정치인이 별로 없었다. 청년층의 의사를 반영할 정치적 통로는 사실상 막혀 있다. 기껏 선심쓰듯이 청년 비례대표 몇 자리를 할당할 뿐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푸대접은 청년층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투표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는 그들을 누가 챙겨줄 것인가. 위로받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얌전하게 자기 앞가림만 하면서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남미 파타고니아에는 남한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평원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양들은 순하기 짝이 없다. 한번은 관광객이 데리고 온 개가 우두머리 양을 위협하니, 우두머리는 가파른 강변으로 달려가 수심 8m의 강물에 뛰어들었다. 더욱 놀라운 광경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공포에 질린 양들이 그 우두머리를 따라 강물로 뛰어들더니 결국 270여마리가 단말마도 없이, 외마디 비명도 없이 사라졌다. 동물전문가 비투스 드뢰셔가 관찰하고 서광원 생존경영연구소장이 전한 일화다. 대한민국엔 순한 양이 너무 많다. 특히 젊은 양일수록 더 얌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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