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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경향의 눈

김영환의 고문폭로 이후

by gino's 2012. 8. 6.

인권에 관한 한 중국은 아직 근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사실도, 몰랐던 사실도 아니다. 유튜브에서 ‘전기봉’과 ‘고문’을 열쇳말로 검색을 하면 끔찍한 피해장면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공안(경찰)에게 얻어맞는 라마교 승려를 비호했다는 이유만으로 전기고문 끝에 사망한 티베트의 젊은 인텔리 시신에서부터 위구르인, 파룬궁 신자 등의 신체에 남겨진 야만적 전기고문 흔적들이 세계인의 분노를 자아낸 지 오래다. 한국 사회가 ‘강 건너 불’ 정도로 여겼던 중국 공안의 폭력성이 새삼스레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민주화 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으로부터 전기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부터다. 신체에 고문 흔적이 남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니, 이를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증거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외교통상부의 놀라운 변신 능력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외교부가 김씨로부터 고문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6월 두 번째 영사면담에서다. 즉각 중국 측에 철저한 진상 확인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답을 받지 못했다는 게 지난달 27일 국회에 출석한 김성환 장관의 답변이었다. 여론 동향이 심상치 않자 표현이 강해졌다. 같은 달 31일 조태영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고문피해 진술을) 인지한 직후부터 중국 측에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사과 및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 등을 엄중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가 모처럼 보인 결연한 의지는 중국 측이 전한 공식 입장이 공개되면서 무색해졌다.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출처: 경향DB)


장밍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지난 3일 이규형 주중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중국은 관련 법 절차에 따라 김씨 등의 합법적 권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문명적이고, 인도적으로 대우했다”는 말로 고문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닭 쫓다가 지붕만 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중국에 대해 인권을 경시하는 비문명국이라고 비난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공허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북한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한 지 20년이 됐다. 중국 정부가 보이는 고자세는 그 세월 동안 맺어온 관계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 공안이 한국민이 아닌, 미국이나 러시아 국민을 억류했더라도 전기고문을 했겠느냐면서 성급하게 민족감정을 덧들일 사안도 아니다. 무언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이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 열쇠는 “한·중 간 우호관계라는 대승적 견지에서 (김씨 등을 석방하는) 선처를 한 바 있다”는 장밍 부장조리의 또 다른 전언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승적 견지’라는 말은 마땅히 중국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하지만, 특별히 석방해주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김씨는 중국 검찰의 기소 전에 전격 석방됐기에 그가 중국 국내법상 어떤 혐의를 갖고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국가위해죄’였다는 죄목만 김씨의 전언을 통해 알려졌을 뿐이다. 김성환 장관은 지난달 중순 방한한 멍젠주 중국 공안부장에게 고문사실을 따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까지는 김씨의 석방이 급한 상황이어서 문제 제기를 안 했다”고 말했다. 책임회피성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외교교섭으로는 석방 자체가 불투명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씨 사건은 처음부터 한·중 양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북한 보위부가 연루돼 있었다. 김씨는 자신의 중국 내 정확한 활동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기고문 사실만을 공개했다. 김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 인권은 물론 자신의 북한 민주화 활동에도 관심이 높아진다면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오히려 연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체제 전복이 북한 민주화의 가장 빠른 길”이라면서 자신 활동의 정당성을 적극 전파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그렇듯이 중국 역시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함께 미래를 도모해야 할 상대다. 그에게는 체제전복 또는 혁명의 대상일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숱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공존해야 할 현실로 북한을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한국민이 중국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면, 이는 주권국가로서 좌시할 수 없는 중대사안이다.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중국 측으로부터 진상조사·사과·관련자 처벌·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절반의 진실만 공개된 채 무작정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만 발전된다면 사실왜곡은 아닐지언정 양국관계에 엉뚱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한·중관계에는 막후교섭이 아니면 풀 수 없는 사안이 적지 않다. 김씨의 석방 자체가 그러한 막후외교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이 부수적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중국에만 진상조사를 요구할 일이 아니다. 정부 역시 가능한 범위에서나마 사건의 진상을 공개해야 한다. 그게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뒷북대응보다는 현실외교에서 더 효율적일 게다. 김씨 스스로 털어놓아야 할 이야기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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