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8.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제 어렵사리 재선에 성공했다. 4년 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등극했을 때처럼 감동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선거인단에선 앞섰지만 득표수에서는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이 다시 한번 오바마의 손을 들어 준 것은 미흡하나마 그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2008년보다 나아졌다고는 해도 미국이 직면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작금의 경제위기를 낳게 한 것은 산업자본보다는 금융자본이, 중산층보다는 부유층이 풍요를 구가하던 ‘구체제’ 때문이었다. 공화당은 그럼에도 이번 대선 과정을 통틀어 작금의 경제위기가 온전히 민주당의 실정 탓인 양 주장을 하면서 구체제로 복귀할 것을 집요하게 유도했다. 자연스레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경제였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자신들의 가치가 선명하게 담긴 공약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롬니 후보가 공약을 통해 제시했던 경제정책은 멀게는 로널드 레이건이 밑그림을 그렸던, 감세와 트리클 다운을 유도하는 경제정책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복원하자는 것이었다. 파국의 주범인 월가 금융기관들을 위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제금융에는 찬성하면서도 재정적자를 빌미로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 예산지출에는 인색했다. 6조원을 웃도는 사상 최대의 선거자금이 뿌려진 것은 ‘그리운 옛날’로 복귀하고자 하는 월가와 부자들의 욕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민이 부자 증세와 건강보험제도 유지, 교육·인프라·기초연구 투자 확대를 약속한 오바마를 선택한 것은 구시대와 절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음을 의미한다. 강경한 이민정책과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가치와, 불법이민자와 동성애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관용을 확대하려는 민주당의 가치 사이에서도 후자를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가 비록 지난 대선에 비해 2000만표 안팎의 표를 잃었음에도 이번 승리의 의미가 각별한 이유다.
오바마는 당선 연설에서 “우리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으로 흥망성쇠를 함께할 것”이라며 국민적 단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재선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공화당이 하원 과반수를 유지함에 따라 대의회 관계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2010년 중간선거 이후 주요 정책이 하원에서 번번이 벽에 부딪혔던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다. 성·연령·빈부·인종·지역별 투표성향이 확연히 갈린 것도 예사롭지 않다. 민주·공화당의 정파적 갈등은 당장 내년 1월의 재정 파탄 사태는 물론 미국 경제의 회복을 지체시킬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통합의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이다. 미국 대선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거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차기 한국 정부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주도적으로 활동공간을 넓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기조에서 대북정책에서 어떠한 돌파구도 찾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태세와 맞물려 사실상 방관해왔다. 하지만 2·29 합의를 통해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북핵 해결에 나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한반도 문제의 진전은 다음달 결정될 한국 차기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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