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7.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엊그제 외교·안보·통일 공약을 발표함으로써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 3명이 제시하는 한반도 정책의 밑그림이 드러났다. 박 후보가 북한 주민들의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상황을 구분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소한 이 문제에서만큼은 맹목적 반북(反北) 정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이산가족 문제의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다짐도 환영할 만하다. 남북교류협력 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에 두고, 전력·교통·통신 인프라 확충 및 국제투자유치를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박 후보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상응하는 정치·경제·외교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 비핵화가 최종 목표일지언정 이를 북핵 협상과 남북대화의 전제로 삼지 않겠다는 유연성을 보였다. 그러나 비핵화에 진전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이 없어 본질적으로 화려한 선거용 구호로만 끝난 ‘비핵·개방·3000’과 같은 운명에 처할 여지를 남긴다.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냉전시대 서방이 인권을 지렛대로 삼아 동유럽 공산블록의 체제전복을 유도했던 헬싱키 프로세스를 ‘서울 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내겠다는 약속도 냉전시대 미·소 간의 대립구도와 미·중의 G2시대를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박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이 이명박 정부가 차린 반찬들을 그릇만 바꾸어 내놓았다는 비판이 가능한 이유다.
박 후보 스스로 밝힌 바 지난 시절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집착에서 벗어나 최소공배수를 찾으려는 자세는 긍정 평가할 만하다. 대북정책이 극명하게 온·냉탕을 오갔던 지난 15년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여야 간에 공감대를 찾는 자세는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냉전 이후 남북이 평화를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수렴하되, 통일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굵직한 방향성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문제에 관한 한 정파다툼을 그만두겠다는 탈정치화의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 선거판을 흐려놓은 NLL 논란을 뒤로하고, 박 후보가 대북정책 공약에 담은 균형잡힌 의식이 청와대에서건 국회에서건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신뢰의 정책, 신뢰의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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