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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마이클 무어가 쿠바로 간 까닭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5. 20.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음식쓰레기를 과감하게 버리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와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가 부족한 나라. 국민 6명 중 1명꼴로 의료보험 무가입자인 나라와 전 국민이 무상에 가까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서반구에 있는 두 나라 이야기다. 전자는 미국이고 후자는 쿠바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지난 2월 배를 타고 쿠바 아바나로 향했다.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서 구호작업을 벌였던 ‘9·11의 영웅들’이 동승했다. 자원봉사를 했다가 온갖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다. 화상, 폐질환, 식도 질환, 외상후 스트레스성 정신이상, 귀·눈 감염. 부시 행정부는 이들을 외면했고 치료는 사보험에 의존해야 했다. 뉴저지주 거주 50대 자원봉사자는 집팔아 치료비를 대고 결국 딸 집 창고로 이사해야 했다. 아바나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코(Sicko·병자)’가 던지는 의문이다.

미국 주요도시 종합병원 근처에는 어김없이 고급호텔이 있다. 며칠만 묵어도 쉽게 수천만원이 넘는 입원·치료비 탓이다. 고급호텔이 더 경제적이다. 아바나의 헤르마노스 아메이헤이라스 병원 주변의 호텔에도 환자들이 묵는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들이다. 쿠바의 의료·제약기술은 정상급이다. 게다가 싸고 친절하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때로 아름답다. 경쟁의 기회가 제공된다. 하지만 몸이 아픈 사람은 링에 오를 수 없다. 미국인 15.9%(4660만명)가 무보험자이고, 의료비 부담이 개인파산의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한다. 정부는 엉뚱한 민성(民聲)에만 귀를 기울인다. 국내총생산의 15%를 챙기는 의료보험산업은 막강한 로비력을 발휘한다. 1990년대 초 클린턴 행정부의 야심찬 의료보험 개혁을 무산시킨 주범이다. 올들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연방정부의 ‘하세월’에 견디다 못한 주정부들이 자체 주민의료보험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쿠바의 의료제도도 완벽하지는 않다. 대수술을 요하는 중병은 무상에 가까운 치료를 받지만 수시로 필요한 두통약·소화제·혈압강하제·비타민은 구하기 힘들다. 암시장에서 비싼 값에 사야 한다. 식량이 부족하지 않되 우유·치즈 등 낙농제품이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로 돈이 돌지 않는 사회구조가 낳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쿠바 정부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상당부분 40여년째 계속되는 미국의 경제제재 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바 정부는 적어도 아픈 국민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는 빈자와 부자가 평등하게 주사를 맞는다. 여북하면 아바나 의료를 체험한 9·11 부상자들이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면서 “되돌아가겠다”고 했겠는가.

의료서비스에 관한 한 시장경제는 경쟁력이 없다. 종종 치명적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치료비 부담으로 병원찾기를 두려워하는 나라. 갖가지 구실로 보험적용을 줄이고 최대 이윤을 챙기는 사기업이 국민건강을 농단하는 나라. 한국은 쿠바와 미국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까울까. 뱃 길은 멀고…. 우리네 가난한 병자들도 누군가 아바나행 비행기에 태워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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