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통합이 福音?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의 지난달 중순 워싱턴 방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도사 역할을 위해서였다. FTA를 새로운 기회의 창으로 지지해 온 양국 재계 간의 ‘FTA 라운드 테이블 회의’를 갖기도 했다. 내친김에 특파원 간담회를 자청했다. 이회장과 재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수치를 열거하며 FTA가 가져올 복음(福音)을 전했다. FTA의 장점을 무역증대·무역전환·경쟁효과로 요약해서 설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5년 내 업계 수출이 3.5배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치를 소개했다.
열띤 분위기는 느닷없는 질문에 반전됐다. “재계 파이가 그리 커진다면 일부를 FTA로 인한 패배자들에게 돌릴 생각은 없느냐”는 제안 탓이었다. 불과 1~2분 전에 희망에 차 있던 한 재계 인사는 “FTA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무한경쟁에 나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종종 언론에 소개되는 미국 기업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미담은 애시당초 기대하기 힘든 게 우리 풍토다. 실정법을 어겨가면서도 악착같이 핏줄에 기업을 넘겨주는 ‘아버지의 책무’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경쟁하게 될 미국시장은 수백억달러를 사회에 쾌척하는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기업가로 활동하는 곳이다.
경제통합이라는 외적 문제와 기업경영 감독이라는 내적 문제를 혼동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통합을 하려면 최소한 수준이 비슷하거나, 같은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고작 15억달러(1조5000억원)를 분식회계 했다는 이유로 최고경영자(CEO)가 24년 4개월의 징역형을 받는 미국과, 분식회계는 물론 수백억원을 횡령한 CEO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대한민국의 풍토는 천양지차다. 24~25년 징역형을 내린 미국 연방법원 판사들이 그렇다고 반기업적인 것도 아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공화당 행정부가 심어놓은 보수 우파 판사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간담회에 참석한 재계 인사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커진 파이를 분배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본인의 근면과 직업적 투철성과 상관없이 설 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에게 패자부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과연 준비가 됐을까. 역시 지난달 워싱턴을 찾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FTA만 보면 문제가 많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비전 2030’과 한묶음으로 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FTA 협상을 일단 시작해놓고 부랴부랴 개최한 ‘비전2030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는 “한국도 최소한 미국 수준의 사회복지예산 지출을 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복지후진국’인 미국은 국내총생산의 15%를 사회안전망 구축에 쓴다. 유장관이 밝힌 우리 수준은 8.7%다. 아탈리가 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까지 미국 수준에도 못 미친다.
워싱턴에서 본 한국은 온 나라가 FTA 효과에 대한 기대로 들끓는 것 같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고민은 경제환경은 늘 속보로 변하지만, 개인의 삶의 조건은 낮은 포복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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