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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이노우에와 혼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4. 29.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대니얼 이노우에.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비공식 토론회 참석차 연전에 방문했던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에서다. 미군 장교들은 과거사 악몽으로 앙앙불락한 한·일관계 탓에 미국의 태평양 군사전략이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은근히 한국의 과거사 집착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께끄름한 마음으로 토론회장을 나서며 돌아보니 토론이 벌어졌던 장교식당의 이름이 ‘이노우에 홀’이었다. 이후 ‘이노우에’는 공식적으론 한·일 역사분쟁에 중립을 지키면서도 은근히 일본의 역성을 드는 미측 인사들의 심사를 간파하는 키워드의 하나가 됐다.

44년째 연방 상원에서 하와이주를 대표하는 ‘외팔이 이노우에’는 살아 있는 신화다. 그 이면에는 민족적 설움이 배어 있다. 진주만 폭격 이후 미국 내 일본인들이 ‘잽(Jap)’이라 불리며 내륙 수용소에 감금당하던 무렵, 청년 이노우에는 의과대학 학업을 접고 자원입대했다.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주로 일본인으로 구성된 ‘니세이(二世) 442연대’에 소속돼 이탈리아 전선에서 공훈을 세웠다. 오른팔을 잃었지만 최고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마이크 혼다. 지난 1월 미 하원에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역시 일본계 미국인이다. 캘리포니아 태생의 두살배기는 콜로라도주의 일본인 수용캠프에서 걸음마를 배웠다. 교사생활을 거쳐 2000년 이후 미 연방 하원의원(민주)으로 활동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전부터 모슬렘·베트남·히스패닉계  소수민족의 민권운동에 앞장서왔다. 어린 시절 수용소 체험은 정치인 혼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미 의회가 1988년 ‘시민자유법’을 제정, 일본인 수용소의 과거사를 공식 사과한 데서 미국의 위대성을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두 사람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혼다가 일본인들이 껄끄러워하는 과거로 돌아가 정의를 외치는 반면에 이노우에는 과거를 덮자고 나섰다. 20대 청년시절 미군 모자를 쓴 뒤 철저한 미국인으로 살아온 이노우에는 조국의 부름을 받은 듯하다. 최근 혼다에게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7명의 일본 총리가 사과를 했음에도 끝나지 않고 있다”며 위안부 결의안에 회의적 입장을 전하기 위해서다. “미·일동맹에 악재가 된다”는 우려도 곁들였다. 교묘한 어투로 책임을 피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논리를 옮겨 적은 꼴이다.

혼다는 일본계 정계 대선배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결의안은 “일본에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몇 안되는 생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정의를 구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결의안 발의 당시의 초지를 일관하고 있다. 일본 보수우파에게 혼다는 배신자로 비치고 있다. 하지만 혼다의 선택은 일본인들을 ‘잽’의 오명에서 벗어나게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주 백악관을 찾은 아베 일본 총리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애견에게 선물을 전달했지만, 당시 백악관 후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외면했다. 바다 건너 ‘푸른 눈의 쇼군(將軍)’과의 관계에 연연하면서 정작 이웃의 원한을 외면하는 한, 일본은 결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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