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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다르푸르 구하기’ 진짜 이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3. 18.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평범한 미국인들의 글로벌 마인드는 ‘한국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부는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지만 국민은 세계에 별 관심이 없다. CNN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매체들과 달리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접하는 지방신문에는 ‘세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미국인들이 20여만명이 희생됐고 여전히 인종청소가 끊이지 않는 다르푸르에 거국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유대인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작년 말부터 ‘다르푸르 구하기(Save Darfur·SD)’를 중심으로 신문과 TV는 물론 온라인 상에서 막대한 광고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고등학생들까지 나서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 SD측에 따르면 휘하 180여개 민간단체에 참여하는 미국민이 자그만치 1억3000만명이다. 한편 반가우면서도 ‘왜 다르푸르일까’라는 의문을 지우기 어려웠다. 미국이 지구온난화와 사형제 폐지,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같은 글로벌 흐름을 거스르거나, 상대적으로 둔감한 것을 생각하면 의문은 짙어졌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400만명이 죽어갈 때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역시 20만명이 살육과 인종청소의 희생양이 됐을 때도 미국인들이 이처럼 뜨거운 반응을 보인 기억은 없다. 안젤리나 졸리나 미아 패로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참여가 관심의 촉매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 세사람 중 한사람 이상이 참여하는 기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은 “인종청소이기 때문”이라는 한 미국인 지인의 지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영국 BBC의 특파원도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관장 인터뷰를 통해 같은 답을 발견한 듯했다. 그는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치의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들의 정서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2004년 미국 내에서 가장 먼저 ‘다르푸르 인종청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뛰어든 것은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가능케 한 동기는 또 있었다.

바로 기독교 단체들의 가세였다. 기독교 단체들은 다르푸르를 생지옥으로 만든 수단 내전이 당초 북부 모슬렘과 남부 크리스천들 간의 종교 갈등에서 불거졌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관심의 동기가 피해자들의 ‘인종’이었다면 미 기독교 단체들에는 ‘종교’였던 셈이다.

미국이 움직이면 세계도 움직인다. 사라예보의 모슬렘들이 1000일 동안 크리스천들에게 포위된 채 무차별 저격과 인종청소로 죽어갈 때 침묵했던 세계는 이례적으로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다르푸르를 최대 현안으로 지목했다. 무슨 동기에서건 반 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다르푸르 학살자들의 잣대가 인종과 종교였듯이 미국의 다르푸르 현상 역시 같은 동기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유대인의 입김이 강한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게 해서다. 정부건 국민이건, 보수건 진보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반 인도적 참극에 별 관심이 없는 한국보다는 낫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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