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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아프간, 10 - 2 = 20명 이상?

by gino's 2009. 11. 2.

김진호 특파원



실망스러운 장고(長考)였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주 내놓은 아프가니스탄 지원책의 결정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방재건팀(PRT)과 보호병력을 묶어 450명 안팎의 청년들을 보내기로 했다. 그 청년들의 운명은 그야말로 운명에 맡겨야 한다. 파병에 대한 찬·반을 떠나 20개월 동안이나 장고해야 했을 사안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처음 한국의 아프간 지원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찾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다. 미국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해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첫 해가 다 가도록 목이 빠지게 기다려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의 ‘자발적 결정’에 감사를 표했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나지 않았나 싶다.

한·미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참여정부가 지지기반을 잠식당하면서도 이라크 파병의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과도 대비된다. 집권 초기 ‘촛불’에 데었기 때문이라는 해석 역시 구차해 보인다. 정치적 악재를 피하겠다는 속셈이 복잡하게 엉켰을 뿐이다. 댓바람에 이라크에 전투병 1개 사단을 보내라고 강압했던 부시 행정부와 달리 오바마 행정부의 요구는 은근했다. 재정지원(국무부) 또는 자위 전투력을 갖춘 PRT(국방부) 중 ‘자발적인 능력’ 안에서 도와달라고 했다. 굳이 군대가 포함된 선택을 한 이명박 정부는 그 책임을 걸머져야 한다.

하지만 아프간 지원책의 결정 및 발표 과정을 보면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은 외교통상부 소관이라고 발뺌을 하고, 청와대 역시 외교부 대변인 뒤에 숨었다. 자국민을 위험지역에 보내는 결정은 막중한 것이다.

오바마는 지난달 29일 자정이 약간 지난 시간, 아프간 전사 미군 유해들이 도착한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를 찾았다.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유해를 담은 관이 성조기로 덮이는 과정을 묵묵히 함께했다. “정치적 쇼”라는 비아냥도 있다. 하지만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에 따르면 오바마는 최근 쉼없이 20시간 동안 아프간 전략을 재검토했다고 한다. 밤 늦게까지 메모 노트를 뒤적이다가 군 지휘부에 물어볼 질문들을 챙기는 건 다반사다. 지난 30일 육군·해군·해병대 지휘관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가진 아프간 회의가 7번째였다. 고민의 성격과 두께가 다른 것 같다.


미군 사병들이 6일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10명의 주민 중 2명의 적을 제거했다면 통념상 8명이 남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르다. ‘10-2=20명 이상’이 된다. 죽은 2명의 가족, 친지들이 복수를 다짐하기 때문이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관이 지난 7월 배포한 교전수칙 내용이다. 오죽하면 탈레반의 도주를 허용하더라도 주민 피해가 우려되면 공격하지 말라고 했겠는가. 미국이 ‘제2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국회에서 파병이 인준될 경우 한국군이 적과 주민이 섞인, 베트남전과 가장 비슷한 환경에 노출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정 및 발표 과정은 한없이 가벼웠지만, 앞으로 국민적 논의 과정은 무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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