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북한의 공격수단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전자기파(EMP) 폭탄을 북한 전역에 퍼져 있는 군시설 부근에 발사한다. EMP탄은 전기나 통신선으로 연결된 모든 전기·전자·통신장비는 물론 자동차 퓨즈까지 무력화시킨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EMP 공격에 대한 우려를 내놓지만, 미국의 경우 이미 실전경험을 거친 상태로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미군은 2003년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EMP 폭탄을 이미 실전사용했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지난 19~22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5차 연례 핵억지력 서밋’에서는 아예 EMP 핵폭탄을 개발해 대기권에서부터 전자기파 공격을 할 수 있는 신무기의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음 목표는 사람이다. 대량의 중성자와 감마선을 발생시켜 미사일의 전자장치나 핵탄두를 무력화시키는 중성자탄 공격을 퍼붓는다. 중성자탄은 콘크리트나 탱크의 장갑판도 뚫고 들어가 인간만을 살상한다. 이후 한국군과 함께 지상군을 투입해 살아남은 적을 소탕한다. 필요하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써본 무인공격기를 동원한다. 핵무기 사용 여부는 정치인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미군 전략가들 입장에서 구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미군 전략가들은 북한의 지난해 12·12 장거리 로켓 발사와 2·12 핵실험을 넋놓고 바라보기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연합사가 있는 서울이야 보는 눈이 많겠지만 하와이 태평양사령부 또는 일본 요코다 공군기지의 주일미군사령부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전쟁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했을 법하다. 공격 수단과 순서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이 작심하면 72시간 내에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 바다 어딘가에 있을 미 해군 핵잠수함은 북한 입장에서 상시적 불안의 핵심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에 성공했더라도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구도는 큰 틀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해온다면 개전 초기 한반도 남쪽이 훨씬 막대한 피해를 입겠지만 결과는 북한의 괴멸로 끝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무기가 ‘자살폭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까닭이다. 한국의 핵개발 역시 자살행위다. 식량자급률 26.7%(삼성경제연구소), 에너지 자급률 4%인 상태에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다면 생존조차 불투명해진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국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핵주권론이나 핵무장론은 북핵에 맞서 ‘공포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은 이미 정전 60년 동안 유지돼왔다도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쓰다 남은 조악한 무기로 치러진 한국전쟁에서 민간인만 330만명이 숨졌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 가운데 어떤 나라도 제2의 한국전쟁을 원치 않았기에 균형은 유지될 수 있었다. 미국이 핵우산을 철수하지 않는 한 북한의 핵무기 능력은 상쇄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한반도 방위를 워게임에 몰두하는 미군 전략가들의 구상에 언제까지 맡겨둘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건, 민간이건 북한 핵실험에 지나치게 민감해할 이유는 없다. 이 점, 대중의 태평함은 정당하다. 지난주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3%가 ‘북한 핵실험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핵실험 당일 증권가에선 매수 타이밍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고, 모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는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북한 핵실험’을 앞섰다. 안보의식 부재를 따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국민이 불안해한다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뿐이다. 지난주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북한의 말단 외교관 한 명이 남한을 상대로 “최종 파괴”를 운운했지만 기실 최종 파괴 불안에 더 노출된 것은 북한이다.
북핵에 단호한 입장 (경향신문DB)
북핵 문제를 다루게 될 정부와 국회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핵을 제외한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배가하되 소리소문 없이 해내야 한다. 국민 불안을 빌미로 요란을 떨었으면서도 되레 상황을 악화시켜온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자다가 봉창 두들기듯 화제성 멘트를 내놓기보다 지금이라도 북핵 위기 속에 밥값을 할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년간의 북핵 외교가 실패했다면 어떻게, 왜 실패했는지 전·현직 외교안보 관료들을 국회로 불러 공개·비공개 청문회 등의 형식으로 점검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구축되는 대로 미국 의회처럼 몇달간 말미를 주고 보고서를 제출토록 한 뒤 이를 정밀하게 검토하는 것도 봉급을 받는 이유의 하나다.
북핵 위기의 항구적인 해결은 어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임기를 넘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북한의 추가 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않는 한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이 당분간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군사적 긴장만 더욱 고조시킨다면 남북 모두 손해를 볼 뿐이다. 지금은 맹목적 반북이나 핵무장론으로 여론을 동요시킬 때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감각이 필요한 때다. 국회는 공부하고 정부는 대응방안을 강구하되 국민은 평안해야 한다.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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