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주 중국을 방문했던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통해 6자회담을 포함한 대화와 협상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반년 가까이 지속돼온 긴장 국면이 조기에 해소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이 대화 용의를 밝히면서도 비핵화 의지는 한사코 내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 역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본심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대결도 대화도 아닌 어정쩡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등 직접 당사국들이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인 평화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갖지 않는 한 ‘평화와 안정’은 공허한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최 특사는 지난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적극적으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비핵화’가 빠진 북한의 대화 제의는 의미가 퇴색된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최 특사가 귀국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함께 경제 및 핵무력 병진노선의 정당성을 거듭 천명했다.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고집하는 한 북핵 문제는 물론 한반도 제반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화 제의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뿐이다.
북핵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경제적 보상과 맞교환할 수 있다는 가정 역시 결과적으로 오류였다. 6자회담이 북한에 장거리 로켓 및 핵 능력을 강화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을 뿐이라는 비판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북한의 대화 용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위한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희박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일방적인 핵무기 폐기만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한·미 역시 새로운 접근을 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모든 북핵 협상이 핵무기와 경제적 보상을 교환하는 구도였다면 이제는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협상의 목표가 ‘북핵’과 ‘평화’의 맞교환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는 북한 외무성의 지난 1월 성명은 잘못됐다. 비핵화와 평화를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미·중이 아닌, 남북한에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정전협상 체제가 60년이나 유지된 데는 미국과 중국 등 한국전쟁의 당사국들이 현상유지에 만족해온 탓도 있다. 남북이 상황을 주도하면서 주변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없이 항구적인 평화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복원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핵과 평화라는 거대한 목표로 다가가는 동안 화해와 교류협력의 작은 발걸음부터 다시 내딛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상호 체제를 비난하거나, 사소한 빌미를 계기로 기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체제의 차이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구도로 복귀할 것을 남북 지도부에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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