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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세계, 한반도

[책으로 세계읽기]미국에게 동북아는 무엇일까

by gino's 2013. 7. 31.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메디치

아시아 패러독스는 갈수록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서도 정치·안보적 협력은 뒷걸음질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현실을 빗댄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은 이를 극복하고 지역 이해당사국들 사이에서 신뢰구축과 협력안보, 경제·사회협력, 인간 안보를 추구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5월8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구상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지지(support)를 표명하면서도,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해서는 “이해한다(understand)”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현실 외교에서 ‘지지’와 ‘이해’ 사이에는 확연한 온도차가 있다. 그 때문인지 한국 외교부는 박 대통령의 방미 이후 서울 프로세스를 ‘편안한 속도’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09년 9월 일본 자민당의 54년 집권을 끝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내세운 ‘동아시아 공동체’ 역시 느슨한 구상이었다. 자신의 좌우명이자 정치철학의 근간인 ‘우애’를 토대로 미국 중심으로 진행돼온 외교의 중심을 인근 국가들로 약간 수정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한달 뒤 방일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미·일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주일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참여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시아 동맹국들이 추구하는 지역중심의 외교노선에 대해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것은 분명하다. 떠오르는 중국을 염두에 둔 예방적 단속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에 동아시아는 무엇일까. 지난 4월 한글로 번역, 출간된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일본의 사례, 1945~2012년>(메디치)을 다시 펼쳐보게 되는 까닭이다. 일본 외무성에서 36년 동안 우즈베키스탄·이란·이라크 대사 등을 역임한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책으로 남겼다. 유독 미국 앞에 서면 작아지는 일본 외교의 한계를 목도하고 패전 이후 일본 현대사를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냈다. 일본의 대미관계는 “기대려면 큰 나무에 기대자”는 지론으로 적극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려 했던 요시다 시게루 총리를 필두로 한 대미 추종파와 시게미쓰 마모루, 이시바시 단잔, 하토야마 유키오 등 자주노선파로 양분된다. 대미 추종파는 보수원류를 형성하면서 검찰과 언론을 동원해 자주파를 솎아내왔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다소 주관적인 판단도 곳곳에 노출되지만 외교문서와 관계자들의 자서전 등 꼼꼼한 자료들이 주장에 살을 보탠다. 저변에는 패전 70년이 다되도록 여전히 ‘정상국가’가 되지 못한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전후 푸른 눈의 쇼군(將軍) 밑에서 회생을 도모했던 일본과 한국의 출발선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전범국, 패전국이 아니면서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우케루의 책이 ‘힘센 미국’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언젠가 대한민국 외교관 중에서도 이러한 명저를 쓰는 사람이 꼭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일본 외교가 미국의 말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분단의 족쇄에서 풀려나지 못한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이라는 두 개의 상수를 껴안고 있다. 우케루의 양분법적 분석틀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토록 경계했던 중국과 신형대국관계라는 새로운 관계설정을 했다. 아베 신조의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을 들먹이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한국 외교는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요즈음이다.

입력 : 2013-07-26 19:52:00수정 : 2013-07-26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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