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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세계, 한반도

다섯 차례 서해교전의 교훈

by gino's 2013. 10. 3.

수정 : 2013-09-27 23:19:28

[책으로 세계읽기]다섯 차례 서해교전의 교훈

▲ 서해전쟁…김종대 | 메디치

국제법과 국제관행에 맞추어 서해 5도와 북측 해안 사이에 등거리를 따라 중간선(median line)을 그어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이 중간선을 공해상까지 연결함으로써 장차 대륙붕 자원개발구역을 할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방한계선(NLL) 사수를 신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들이 들으면 분노할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쩌랴. 북한도, 남한 내 평화주의자들도 아닌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오래전에 내놓은 충고인 것을. 한·미동맹을 또 다른 신앙으로 떠받드는 이른바 보수들은 NLL 문제가 나올 때마다 CIA가 1974년 1월 내놓은 ‘서해의 한국 섬들’이라는 보고서를 애써 외면한다. 미국 행정부가 NLL 문제에 대해 단 한번도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덮어두고 있다.

 

 

 

 

서해가 분쟁의 바다로 돌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북한이 넘어와도 상관이 없는 선”이라고 공언했던 NLL이 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1999년 6월15일이다. ‘선제사격을 하지 말되 지혜롭게 NLL을 고수하라’는 애매한 지침 탓에 우리 해군 2함대 고속정들이 북측 함정과 충돌해 밀어내는 궁여지책으로 며칠째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날 아침 전속력으로 돌진한 우리 고속정 한 척이 북한 어뢰정의 갑판 위로 올라가버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오전 9시28분 북한군의 기관포 발사로 시작된 교전은 14분 만에 끝났다. 북한 어뢰정 한 척이 침몰하고 나머지 배들도 심각하게 파손됐다. 제1연평해전이다.

군사전문가 김종대씨가 최근 펴낸 <서해전쟁>은 제1·2연평해전과 대청해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서해상에서 벌어진 다섯 번의 교전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남과 북의 해군이 똑같이 “절대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대치 중 발생한 제1연평해전은 사실 전쟁이라기보다는 ‘사건’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 교훈을 찬찬히 들여다봄으로써 추가적인 충돌이 없도록 단도리를 했어야 마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러나 ‘NLL 사수’를 대한민국과 반대한민국 세력을 가르는 정치적 잣대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도무지 서해가 10여년 전부터 상시적 화약고로 돌변한 까닭을 되짚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김씨의 책은 군과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빈틈을 메우고 있다. 교전을 방지하려는 정치적 의지의 실종, 우발적 사건이 필연적인 교전이 되고 결국 큰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게까지 한 정치적 단견, 실제상황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육군 출신이 장악한 합참과 현장의 해군 간의 부조화, 군의 무능과 위선 등의 잣대로 다섯 번의 교전을 분석하고 있다.

제1연평해전의 승리에 도취한 군은 3년 뒤 북한군의 도발 움직임을 경고한 대북감청부대의 민감하고 엄중한 정보를 누락시켰다. 작심하고 도발한 북한 해군에 맞서 진용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고속정 한 척이 맥없이 침몰한 제2연평해전으로 이어졌다. 제2연평해전을 승전으로 왜곡한 군수뇌부의 거짓말과 위선이 블랙코미디를 연출했다. 지상전 개념으로 해전을 지휘한 합참의 구조적 결함은 개선되지 않았다. 되레 2009년 11월 북한군이 50발을 발사하자 3분간 4960발의 함포를 발사하는 과잉대응을 낳았을 뿐이다. 거듭된 수상함 교전에서 한계를 깨달은 북한의 잠수함 공격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묻혔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으로 확대됐다. 북한에 비해 압도적 우세를 갖고 있으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군의 등에 업히려는 군수뇌부와 정치권은 미국 항공모함을 서해로 끌어들여 한·미 합동훈련을 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엊그제 군 수뇌부 인사에서 창군 이후 처음으로 해군 출신 합참의장이 탄생했다. 그만큼 서해방위의 중요성이 커진 셈이다. 하지만 다섯 차례의 서해교전이 남긴 교훈을 갈무리하지 않는 한 죄없는 청년들이 검푸른 바다에서 희생되는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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