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한반도 리서치]멈추지 않는 ‘북핵열차’
2013 10/08ㅣ주간경향 1045호
핵 활동이 새로 포착되고 각국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면서 북한 핵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미 공조 명분으로 북핵 해결을 미국에 아웃소싱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언제까지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인가.
한동안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북한 핵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 한국 등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국 정부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 이후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던 북한의 핵활동이 다시 포착된 데다, 각국의 전문가들이 잇달아 내놓고 있는 새로운 분석 결과들은 북핵문제를 언제까지 방관하고 있을 계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북핵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발단은 2007년에 활동을 중단했던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 정체불명의 하얀 연기가 나오는 장면이 담긴 위성사진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의 한미연구소는 지난 9월 11일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연기의 색깔과 양으로 볼 때 원자로가 가동 중이거나 가동 직전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면서도 “예의주시하겠다”고만 했을 뿐 큰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 정부 역시 어슷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이 지난 4월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했던 만큼 6개월 정도 걸리는 재가동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연기가 나올 때가 됐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동향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알려진 위험인 플루토늄 프로그램보다는 미지의 위험인 우라늄 프로그램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월 12일 세 번째 핵실험을 통해 폭발력 증대 및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에 성공했다면서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에 진전이 있었음을 암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핵전문가인 조슈아 폴락 과학적용국제법인(SAIC) 선임연구원이 9월 25일 아산정책연구원의 북한 콘퍼런스에서 내놓은 분석 결과는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북 원심분리기 핵심부품 국산화”
폴락 연구원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원심분리기의 핵심 부품들을 자체 생산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6대 핵심 부품으로 꼽은 것은 원심분리기에 주입할 가스 형태의 육불화우라늄(UF6)과 진공펌프, 링 마그넷, 주파수 인버터, 마레이징 강철, 컴퓨터 수치제어 유동성형 기계 등이다. 이 중 육불화우라늄과 진공펌프, 링 마그넷, 주파수 인버터는 북한의 과학보고서와 특허 수상자료를 통해 공식 확인되며, 마레이징 강철도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했던 주체강철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수치제어 유동성형 기계들 역시 김 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현지지도 사진들을 통해 확인된다면서 관련 사진들을 군축 관련 웹사이트(www.armscontrolwonk.com)에 공개했다. 폴락은 “북한의 핵심 부품 자력생산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개발을 막기 위해 동원해왔던 수출 통제 및 제재, 물리적 차단 등의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개발해온 원심분리기는 종래의 가스 확산 방식에 의한 우라늄 농축에 비해 전력을 덜 필요로 하고 방출하는 열도 적다. 농축시설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건설할 수도 있다. 이는 북한이 농축시설을 만들어도 군사위성 등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폴락의 지적대로 언젠가 북한과 비핵화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북한 스스로 고백하기 전에는 농축시설을 검증할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북한이 농축시설의 핵심 부품을 국산화했다고 해도 기본 품목은 여전히 수입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 품목들의 수입 현황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대상이 아닌 품목들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추정 우라늄 매장량이 400만톤(대한상공회의소)에 달하는 북한은 천연우라늄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북한의 원심분리기 핵심 기술 확보 사실을 입증한 분석작업은 폴락뿐 아니라 세계적인 우라늄 농축 전문가인 스캇 캠프 MIT대학 교수가 함께한 것으로 신빙성을 더한다. 폴락은 “북한의 핵능력 과시가 과거에는 실제 능력보다 부풀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분명한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 핵실험 금지나 추가 장거리 로켓 발사 금지, 타국으로의 핵기술 수출 금지 등을 현실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상한으로 설정했다.
방치할수록 문제 해결 어려워져
북한의 핵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북핵이 당장 목전의 위험은 아닐지언정 중단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험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은 고도의 기술 축적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9월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북핵문제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심포지엄에서 “농축은 (원심분리기) 수천 개 가운데 한 개만 고장나도 잘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심 부품 국산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발언이었다.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농축시설이) 실제 가동된다면 북한이 (하얀 연기가 포착된) 5메가와트 실험용 원자로를 재가동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중국의 핵전문가 리빈 칭화대 교수 역시 9월 25일 아산정책연구원의 북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북핵이 당장의 위협은 아니더라도 무시할 수 없다는 데 방점을 두었다. 리빈 교수는 3차 핵실험 뒤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적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통상 핵실험을 할 때 핵물질보다 많은 화학물질을 넣어 실험하지만 북한은 1차 핵실험의 경우 소형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조금 넣어 실험했다가 실패했고, 2차와 3차 핵실험에서는 폭발력을 증대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발표 가운데 폭발력 증대에 성공한 것은 맞더라도 소형화와 다종화(고농축우라늄 핵무기)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리빈 교수는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으로 상당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상태이지만 핵무기 소형화를 이루기 위해 다시 플루토늄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북한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모두 이용한 핵무기 개발에 최종적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국가적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쉽게 사용할 수는 없다.
핵무기 능력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핵실험도 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과 달리 북한이 끊임없이 핵활동을 공개하는 것도 해결 기회를 제공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의 표현대로 “북한의 핵개발 열차가 (영화) 설국열차처럼 어떠한 악천후에도 끝까지 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방치한다면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란 핵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2012년 2월 26일 베이징 합의가 불발된 이후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무시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한·미 공조라는 명분으로 북핵 해결을 미국에 사실상 아웃소싱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다. 북핵열차가 설국열차가 되지 않도록 나서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다.
<김진호 경향신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