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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북·미 징검다리 역할도 못하는 박근혜 정부

by gino's 2013. 10. 15.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놓고 처음 마주앉은 것은 1991년 10월 말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였다.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던 와중에 북한의 제안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의제로 올랐다. 하지만 북한이 핵문제 회담 탁자에 초대하려 한 진짜 상대는 미국이었다. 남북 간의 ‘핵협상’이 두 달 뒤 한반도 비핵화 선언문 한 장을 달랑 내놓고 유야무야된 반면, 이듬해 1월 아널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용순 조선노동당 국제비서 간에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시작했다. 남북대화의 기능은 북·미 회담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였다.


1차 북핵 위기 국면에서 북·미가 제네바 합의에 이르도록 김영삼 정부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그 시절 유행했던 문구가 통미봉남(通美封南)이었던가. 이후 한국 정부의 요구로 북·미 대화 전에 남북 대화가 열리는 틀이 굳어졌다. 뭔가 역할을 하긴 해야겠는데 뾰족한 수가 없는 정부일수록 ‘북·미 대화 전 남북 대화’는 매력적인 카드였다. 별다른 복안도 없이 일각의 반북 정서에만 올라탔던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2·29 베이징 합의를 도출해낸 북·미 간 세 차례의 고위급 회담 전에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두 차례 만났지만 무늬만 회담이었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대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서우두 국제공항에 들어서고 있다 (출처 :AP연합)



하지만 징검다리 역할도 활용하기 나름이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미 대화를 적극 지지했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거대한 흐름 속에 큰 그림을 그렸다. 미·일의 대북 교차승인을 추진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미 회담을 주선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로 이어지는 그랜드디자인을 토대로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동시에 북·미 대화를 지지했다.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북핵 문제를 북·미가 먼저 논의한다는 사실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어차피 한국은 핵을 들고 회담장에 나올 북한과의 협상 탁자 위에 올려놓을 칩이 별로 없다. 남한의 해상·수중·공중에 수시로 배치되는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철회, 북·미관계 정상화 가운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북·미 대화의 징검다리 역할이라도 적극 펼치면서 한편으로 남북 대화의 내용과 수준을 격상시킬 칩을 쌓아가야 한다. 


김영삼·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되풀이하고 있는 실책은 바로 긴요한 칩이 될 자원을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먼저 소진시켰다는 점이다. 남북 간에 해상경계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남북 간 정치·군사회담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은 어떤가. 유사시 국군 통제권조차 없는 남한 정부를 상대로 북한이 한반도 핵심 문제를 다루는 회담에 진지하게 나설 이유가 있겠는가. 미국 내에서조차 남우세를 사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지난 6월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공식 제안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아직 핵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이란과의 협상에는 적극성을 보이면서도 정작 세 차례의 핵실험을 끝낸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용의는 내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해 2·29 합의를 깬 이후 대북 회담 추진의 동력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비확산체제를 관리하는 미국에 북핵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더 큰 우선순위는 동아시아에 미국 중심의 견고한 지역질서를 수립하는 데 있다. 미국이 이달 초 일본과의 전략대화에서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를 공식 지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6자회담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 AP연합)


이 지점에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역할이 놓여 있지만, 현재까지 기대할 만한 움직임은 없다. 북·미 대화 주선은커녕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가타부타 입장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개성공단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놓고 남북 대화가 있었지만 실무 차원의 기술적인 논의에 그쳤다.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는 대답해야 한다. 김영삼·이명박 정부처럼 구경꾼의 자리에 머물 것인지를 말이다. 원칙과 신뢰는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략적 밑그림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국내외 홍보를 계속하는 것 외에 어떤 밑그림을 갖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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