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한반도 칼럼]시리아와 한·미동맹의 현주소
전투에서 패한 장수는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책 없이 전선만 확대시킨 장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시리아 문제와 한반도 문제가 섞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친절한 한마디가 원인을 제공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8일 브루나이에서 만난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에게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북한에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미국의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1년 전 화학무기 레드라인(금지선)을 설정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지난 8월21일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뒤 시리아 공습에 나서려는 참이다. 김 장관은 묻지도 않은 ‘북한 화학무기’의 존재를 먼저 꺼냈다고 한다. 안팎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던 오바마 행정부는 망외의 시리아 공습 논리를 반기고 있다. 헤이글 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란·헤즈볼라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면서 시리아 공습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자 외교부의 시리아 사태 공식성명은 “극악한 범죄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관련자들은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도 ‘북한’이라는 단어는 없다. 정부 입장과 장관 발언이 따로국밥인 셈이다. 국방부 스스로 “정부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을 정도다. 주요 사안에서 메시지를 통일하지 못하는 정부는 삼류다. 불안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냉혹한 국제관계의 현실에 비춰본다면 시리아 사태는 한반도의 안보적 이해와 관련이 없다. 영국이 미국의 푸들 역할을 거부하고, 프랑스와 터키를 제외한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들이 사태를 관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처럼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는 이스라엘의 제1타깃은 정작 시리아가 아니다.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하면, 이스라엘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이란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 김 장관 논리대로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역시 “해야 한다”면서 부추겨야 한다.시리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1992년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아직까지 화학무기 보유 사실을 단 한차례도 인정한 적이 없는 반면에, 시리아는 지난해 7월 처음으로 보유사실을 인정했다. 그 끝에 나온 것이 오바마의 레드라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 겉도는 와중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은 화학무기 문제를 국제 현안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 이를 가늠하는 것은 고등수학이 아니라 단순한 산수의 영역에 속한다. 최전선을 맡은 ‘장수’가 아니라 ‘장관’이라면 최소한 시리아와 북한을 가려보는 안목쯤은 갖춰야 한다.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언이 미칠 파장을 헤아리는 것 역시 기초 교양과목이다. 갤럽의 지난 주말 조사결과 시리아 공습은 이라크와 아프간 침공, 코소보·세르비아 공습, 걸프전 등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벌인 무력개입을 통틀어 사상 처음으로 반대가 50%(찬성 36%)를 넘었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공습에 나서려는 이유를 한 가지만 든다면 체면 때문이다.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1400여명의 시리아 주민들을 위한 정의는 더욱 아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이란군과 쿠르드 주민들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을 해도, 민주콩고공화국 전쟁으로 500여만명이 죽어도, 사라예보가 1000일 동안 포위돼 주민들이 저격수들의 사냥감이 됐어도 나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정전 60년이 되도록 한반도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다. 오바마의 시리아 공습이 ‘레드라인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비아냥이 미국 내에서 나오는 이유다. 시리아 문제는 그들의 문제이다. 최소한 제코가 석자인 한국이 나설 문제는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다시 몇년 미루자는 이야기를 주로 했던 한·미 국방장관 회담 자리에서 느닷없이 북한 화학무기를 꺼낸 김 장관과 한반도 문제를 고작 시리아 공습의 명분으로나 활용하는 미국. 올해만 34조5627억원의 예산을 쓰면서 미국 없이는 국토방위가 어렵다는 한국과, 매년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 지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하면서도 팔 걷고 해결에 나서지 않는 미국. 김 장관의 돌출발언이 드러낸 한·미동맹의 현주소다.<김진호 선임기자>
입력 : 2013-09-09 21:3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