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드 | 말글빛냄
2007년 9월5일. 시리아 디르 아 주르에 건립된 정체 모를 건물 상공에 이스라엘 공군의 F15 전투기 7대가 다가와 공대지 미사일과 500㎏의 폭탄을 투하했다. 전날부터 인근에 잠복하고 있던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은 레이저광선으로 과녁을 정확하게 비춰주었다. 시리아가 북한의 기술적 지원을 받아 건설 중이었던 것으로 의심된 원자로 시설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2000년대 초부터 시리아·북한·이란이 협력한 핵개발의 성격을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디르 아 주르에 건설된 수상한 건물의 정체를 밝혀낸 첩보전의 개가였다. 이 사건은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북핵 6자회담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이 공격한 시설이 과연 북한이 지원한 핵무기제조용 시설이었는지 100% 분명치는 않다. 하지만 모사드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스라엘 안보에 잠재적으로나마 위협이 될 수 있는 국경 밖의 시설과 장비, 사람은 제거대상일 뿐이며 그 집행자는 철저해야 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전설적인 첩보활동에 관한 저작물이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철저하게 흑막에 가려져 있던 모사드의 구체적인 활동내용이 어떻게 공개됐느냐는 점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모사드의 전설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주변의 적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서움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할 때 효과가 배가된다. 하지만 모사드의 활동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책이나 영화 등으로 다시 알려진다. 모세 다얀 장군의 보좌관을 지낸 미카엘 바르조하르 하이파 대학 교수와 이스라엘 언론인 니심 미샬이 공동집필해 최근 번역된 <모사드> 역시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모사드 비밀작전의 상세화를 보여준다. 공동저자 가운데 한 명인 바르조하르 교수는 모사드의 비밀활동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밀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야 할 모사드가 슬그머니 그 일단을 흘리는 것은 또 다른 성격의 ‘작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지도력이 없으면 백성이 쓰러지고,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다”는 성경 구절을 모토로 삼고 있는 모사드 요원들은 ‘(과거를) 결코 잊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출발은 복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나치의 하수인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출발한 모사드는 나치 친위대(SS) 중령 출신 아돌프 아이히만과 라트비아의 파시스트 지도자 허버트 쿠커스 등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장본인들을 종전 수십년이 지나서라도 찾아내 피의 복수를 해왔다. 나치에 대한 유대인들의 복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쾌감을 준다. 나치의 군홧발 아래 절대 약자였던 유대인들이 복수에 정의의 사도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도 한다. 하지만 나치에 대한 복수가 사실상 끝난 지금, 모사드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활동에 나서는 정보기관의 하나일 뿐이다. 작전의 성공률이 높고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1980년대 곤란에 처한 에티오피아의 ‘검은 유대인’ 수만명을 본국으로 수송하기 위해 모사드 요원들이 목숨을 걸고 벌인 탈출작전은 눈길을 끈다. 에티오피아의 유대인들을 수단 난민촌으로 옮겨온 뒤 배와 비행기로 이들을 데려오기까지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지만 유대인들의 남다른 민족애와 이를 기어코 구현해내는 모사드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야말로 국가와 민족에 헌신하는 모사드의 정신은 염천 더위만큼이나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드라마가 진행되는 와중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도 같이 다가온다. 모사드나 그 요원들을 할리우드 영화의 람보처럼 영웅으로 여길 생각은 없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을 던지기는커녕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안보가 아닌, 정쟁에 뛰어들면서도 ‘국정원의 명예’를 운운하는 수장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다. 우리 정보기관이 건국 이후 언제 복수다운 복수, 작전다운 작전을 했었던가.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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