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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s

2014 신년대담 남북관계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by gino's 2014. 1. 7.

[신년 대담 2014년을 조망하다](3) 남북관계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ㆍ“동북아평화구상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남북관계 개선 먼저”

새해 남북관계에는 과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가.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를 내비치고,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붕괴를 단정하고 벌써부터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시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경향신문이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과 송민순 경남대 석좌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간의 대담자리를 마련한 까닭이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유라시아 철도 연결과 같은 거창한 구상을 내놓기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대북정책의 ‘입구’부터 찾을 것을 주문했다. 송 전 장관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 등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겹치는 부분을 한국이 묶어줌으로써 북핵외교 및 대북정책에서 주도권을 잡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담은 지난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고, 6일 전화로 추가 의견을 들었다. 대담 사회는 김진호 선임기자가 맡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왼쪽)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5일 경향신문사 앞 정동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정세현
금강산 관광 해법 빠진 이산가족 상봉 제의
일방적 제안일 뿐 박 대통령 진정성 안느껴져

▲ 송민순
뭔가를 해보려는 자신감이 대북정책 성공의 출발점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대북정책 바꾸는 데 큰 제약

 

김진호 선임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 밝힌 대북정책과 대외관계 방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울러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기치로 내걸었던 취임 첫해의 대북정책을 총평해달라.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 비핵화 관련해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풀어나가겠다는 내용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한 것이나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면서 정말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가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추석 때 이산가족 상봉이 불발된 배경에는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하면서 이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설명이 없다. 이것은 일방적인 제안이다. 받으려면 받고 안 받아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겠나. 지난 3일에 정부가 북한 신년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고 했는데 이번 제안 역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송민순 경남대 석좌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 통일에 대한 사회적 응집력을 결속시키는 의미에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메시지를 준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남북협력이나 공동 번영, 동질성 회복 등의 과제가 북한 핵문제에 걸려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통일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 방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전히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전제를 내세우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지난 1년 간 정부는 사실상 핵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었다. 지금도 ‘다양한 해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한다. 지금쯤이면 초기 계획의 결과가 나왔어야 하는 시기다. 그런 점이 매우 아쉽다.

 

정세현 = 박근혜 정부가 밝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대로만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정부 출범하고 나서 자꾸 조건을 달기 시작했다. ‘신뢰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가 ‘진정성이 확인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진정성만 따지다가 1년을 다 보냈다. 최근에도 대통령 발언 등을 보면 거창한 얘기가 많다. 유라시아 대륙을 철도로 연결하고 동북아시아 평화로 이어지도록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기왕에 이어놓은 경의선, 동해선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데도 남북관계는 놓아두고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든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든, 유라시아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든 남북관계 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송민순 = 박근혜 정부의 대외정책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신뢰 프로세스는 ‘신뢰’와 ‘프로세스’를 떼어놓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신뢰 구축 과정은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며, 행동은 주고받아야 한다. 누군가 먼저 행동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100m 달리기처럼 어느 한쪽이 먼저 뛰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측이 먼저 행동을 보여주고 그 행동이 북을 설득 내지는 강요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결국 신뢰 프로세스는 아직 궤도 위에 올라가지 못한 원칙에 불과하다. 원칙을 채워주는 알맹이를 1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 같다. 한반도 문제의 진전 없는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은 의미가 없다. 출발선을 떠나지 못하는 경주마 같은 정책이 될 수 있다.

 

김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정세와 무관한 인도적 지원을 신뢰의 고리로 제시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민간부문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되레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해보다 줄었다.

 

정세현 = 대북 지원 사업을 하는 사람들 말이, 김영삼 정부는 ‘쌀은 된다’고 했고, 이명박 정부 때는 ‘쌀은 안되고 옥수수까지만 된다’고 했다. 지금은 ‘옥수수는커녕 밀가루도 안된다’고 한다. 북한은 ‘의식주’라고 안 하고 ‘식의주’라고 할 정도로 먹는 문제가 절박하다. 그렇게 절박한데 밀가루도 주지 말라고 한다. 대통령이 원칙론에 얽매여 스스로 결단을 못내리면서 자승자박이 됐다. 주무부처 장관들도 청와대를 의식해 더 깐깐하게 한다.

김 = 북한이 올해 식량을 증산했다고 한다. 최근 3년의 증가 추이를 보면 참여정부 당시 매년 지원했던 식량 정도가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추산이 맞다면 남측 식량에 대한 북한의 필요가 적어질 수도 있지 않나.

 

송민순 =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통계가 실제보다 더 많이 잡힌다. 항상 목표를 초과 달성하기 위해 실적을 부풀려서 보고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인구에 비해 농지가 많지 않다. 구조적으로 모자랄 수밖에 없으니 수입해야 한다. 중국에 자원을 싸게라도 팔아야 한다. 장성택 숙청 때도 이 문제가 나왔다. 결국 식량 때문에 북한은 중국에 대한 편중이 심화된다.

 

정세현 = 세계식량계획(WFP)이나 우리는 위성사진과 경작·재배 면적 등을 보고 추정을 하지만 실제 작황은 큰 차이가 있다. 북한에 필요한 식량은 연간 550만t인데, 북한 경지면적이나 비료, 농약 등 생산능력, 사회주의 체계의 기본적인 생산력 한계 등을 감안하면 도정을 끝낸 정곡 기준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북한은 금년 신년사에서도 농업 쪽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그러겠냐.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겠나. 북한의 식량이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 대북지원의 불필요성을 말하기 위한 정치적 논리로 악용될 수도 있다.

 

송민순 = 국민들은 남북관계를 1 대 1로 보고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본다. 그런데 동북아 전체 질서가 바뀌고 있다. 일본은 일·중 구도를 만들려 하고 이 와중에서 한국 자체가 떠밀려 다니는 판이다. 남북관계를 1대 1 관계로 보는 것은, 씨름으로 치면 백두급이 금강급과 샅바싸움을 하는 격이다. 남들은 씨름판 밖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있다.

 

정세현 = 젊은이들의 통일 생각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6·25 때의 대북 혐오증이나 공포증은 여전히 있다. 세습됐다. 이것이 장성택 사건으로 더 커졌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 때부터 ‘제2의 월남화’를 경계해야 한다면서 ‘선 안보 후 통일론’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경제발전에 따라 남한 내에서 빈부격차가 생기고 사회주의적 이상론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까 정부가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반북 정서를 의도적으로 키웠다. 하지만 지금 남북의 전반적인 국력은 1 대 1이 아니다. 10 대 1 아니, 그 이상의 수준이다. 자신감을 갖고 북한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신뢰 프로세스는 내일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자신감이 없으니 진정성을 확인하려 하고, 자꾸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다.

 

송민순 = 국민적 통합이 안되면 대북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운 문제다. 한국이 자신감을 갖고 뭔가 해보려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래야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도 커진다. 대통령 5년 단임제도 문제다. 임기 말에 가면 성과에 급급해 우리가 칼자루가 아닌 칼끝을 쥐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5년 단임제라는 것이 우리 대북정책, 미래를 바꾸는 데 굉장한 제약이다.

 

김 = 북한의 장성택 숙청은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장성택의 숙청은 과연 정권의 불안으로 생긴 것인가, 아니면 정권이 강해서 벌일 수 있었던 일인가.

 

정세현 = 장성택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2015년 통일론까지 나오고 있다. 장성택 사건을 세력 대 세력의 싸움으로 본다면 그런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북한에는 ‘수령 무오류성’이란 것이 있다. 김일성, 김정일이 결정한 것은 다 옳다는 것이다. 그걸 무시하고 장성택이 쿠데타로 집권하거나 김정남을 옹위한다는 게 말이 잘 안된다. 장성택 주변 사람들이 장성택이 숙청된 뒤에도 건재한 것을 보면 장성택이 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이걸 북한 체제 붕괴의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송민순 = ‘권력은 자연현상과 같아서 진공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권력세습 과정에서 약간의 공백이 생기고 그것을 서로 차지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장성택이 밀린 것으로 본다. 그리고 대외사업 하다보니 돈이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의 장악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아무리 세습 왕조, 수령의 무오류라고 해도 3대쯤 오면 흐트러진다. 북한이 이번에 신년사에서 유일체제 강조한 것 역시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김 =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지고 그로 인한 도발이 2~3월쯤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세현 = 북한은 매년 12월부터 3월 말까지 동계 기동훈련을 한다. 대규모 훈련은 아니고 부대 단위로 한다. 우리 쪽에서는 2~4월에 대규모 훈련이 있어서 북한과 기간이 겹친다. 우리가 강하게 움직이는 것을 빼버리고, 북한이 움직이는 것만 부각시키면 ‘도발’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시간적으로 2~3월 도발설을 꺼내는 것을 보면 6월 지방선거 앞두고 긴장된 상황이 필요해서 저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송민순 = 전면전이 아닌 국지 도발은 항상 가능하다. 무엇보다 작용-반작용이 있다. 남쪽에서 훈련하고 하면 북한도 같이 훈련해야 하고 이로 인해 긴장이 올라가기 때문에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 장성택 숙청 과정에서 보여준 북한의 비문명적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인권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이를 계기로 대북인식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세현 = 장성택 처형에 대한 언론보도는 황색저널리즘에 가깝다. 홍콩 문회보는 장성택이 굶주린 개 120마리에게 알몸으로 던져지고 300명의 간부들이 지켜봤다는 미확인 보도까지 했다. 이런 보도는 북한 혐오증을 확대 재생산한다. 대북지원이 어려워지고 남북관계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중국이 장성택 사건으로 대북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비난 여론이 있지만 중국 지도부의 대북정책 결정은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한다.

 

송민순 = 우리 국내적으로도 대북정책 통합하려면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걸 장성택 사건과 연결시켜서 부각시킬 문제는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북·중관계에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들은 투자 전에 제일 먼저 예측 가능성과 법, 절차 등이 있는지를 본다. 그런데 장성택 처형 과정에서는 이런 게 전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은 있을 것이다.

 

김 = 북한 신년사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어떤 부분을 주목해야 하나.

 

정세현 = 농업문제 강조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의지가 있다면 북한의 농업문제를 핵심고리로 삼을 수 있다. 북한은 농업의 생산 및 관리 방식을 바꾸고 있다. 포전담당제, 분조관리제로 농민에게 생산물의 처분권 부여와 같은 변화를 주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선언 이후 10여년 만에 썼던 방식이다. 북한도 2002년에 한번 했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농지 면적이 뻔하고 비료, 농약 생산량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식량난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만들자고 했다. 우리 정부는 이틀 만에 북한의 언급은 제의라고 볼 수 없고 진정성에도 의구심이 든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제의가 없었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러니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송민순 = 북한은 신년사에서 유일영도체제를 강조했다. ‘정권이 안정되고 있으니 흔들지 말라’는 대외적 메시지다. 그리고 농업·경제를 강조했다. 크게 보아 북한이 내놓은 메시지는 ‘배고프다. 대화 좀 하자’라는 한마디다.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것에 매우 민감해한다. 그래서 중국과 미국, 한국까지 모두 숨구멍을 열어놔야 한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그걸 열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또 이전과 달리 핵 문제를 갖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고 매우 억제된 표현을 썼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핵문제를 놓고 교섭하고 협상할 수 있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핵문제도 얼마든지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정세현 = 정부는 북한이 핵문제 얘기 안 한 것이 수상하다면서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북한이 신년사에서 핵문제를 직접 거론하거나 핵활동을 계속하겠다고 안 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또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얘기했던 사람들이 1년 만에 그걸 빼고 경제 중심으로 신년사를 했다. 이게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민순 = 외교관들이 잘 쓰는 말 중에 ‘네가 말 안 한 것이 말한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말이 있다. 말 안 했기 때문에 달라진 게 없다고 할 게 아니라 북한이 말 안 한 이유를 잘 봐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말할 게 아니라 ‘지금 말한 것에 대해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행동이 따라와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지켜보는 것이 맞았다. 박 대통령의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의구심부터 얘기한 것은 정부 내 어딘가에서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를 사보타주하려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김 = 지난해 북한의 장성택 처형 직전까지 각국의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모두 정지된 상태다. 새해 북핵외교의 재개 전망은 어떤가.

 

송민순 = 핵문제는 한반도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한반도 문제가 지금까지 고비마다 핵·미사일로 발목이 잡히지 않았나. 핵문제는 남북관계와도 맞물려 있는 축이다. 지금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에서 서로 견해가 다르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 나서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런데 미국과 전략적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이 미국과 북한을 중재하는 데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래서 중국와 한국이 함께 보증을 서야 한다. 아무도 정치적, 외교적으로 투자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핵문제의 재앙을 맞을 당사자는 한국이다. 대통령이 이런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정권 2년차에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굴려야 한다. 집권 3년차에 들어가면 정권의 추동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세현 =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혼자 역할을 해달라는 발상은 중국이 미국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도 덩달아 중국 역할론을 얘기하는데 사실은 한·중 역할론이 맞다. 그리고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남북관계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은 같이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김 =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아시아 전략의 명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북핵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

 

송민순 = 우리가 항상 ‘을’이 아니라 ‘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의 아시아전략, 대 한반도 전략문제에 대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종속변수적 시각에 갇혀 있다. 하지만 어떤 미국이냐를 봐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놓고 산업·금융자본과 군산복합체 간에 끊임없는 경쟁이 벌어진다. 산업·금융자본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군산복합체는 한반도 긴장을 필요로 한다. 미국 국방예산이 매년 500억달러씩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의 F-35나 미사일방어(MD) 구매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이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줄 것인가가 의미 있다. 미·중은 전략적 경쟁자 관계지만 공통적으로 원하는 지점도 있다. 핵심 포인트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유지다. 또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중국의 핵심이익인 동시에 미국 산업·금융자본의 이익이다. 미국이 관계 정상화를 하면 자연히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미국이 늘 강조하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인권도 높인다. 이처럼 비핵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보편적 가치에 대해 미·중이 적정한 수준까지 협력이 가능하다. 그런데 (외교)현장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은 워낙 큰 바퀴여서 조율된 방향으로 굴러가기가 쉽지 않다. 이 둘을 한국이 묶어줘야 한다.

 

김 = 일본의 우경화로 동북아시아가 격랑에 처해 있다. 일본의 우경화가 남북관계나 북핵문제 해결에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송민순 = 일본의 우경화는 이미 선로 위에 올려진 열차와 같다. 계속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속도이다. 미·중의 주요 2개국(G2)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여기서 오는 국민적 불안감이 아베 신조 정부의 출현을 낳았다.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중·일의 G2 구도를 만들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중·일관계에서는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 한국 입장에서 세계 2~3위 국가 간의 군비경쟁에 휘말리는 것은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이 지금 열리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군사대국화에는 북한의 위협과 중국과의 해양 영유권 분쟁이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중·일에 싸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우경화, 군사대국화로 가는 구실을 없애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지금 역사적으로 특수한 미·중 공조시대에 들어섰다고 본다. 이를 넘어서려면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위협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 = 국내적으로 대북여론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비이성적인 종북 논란이 먹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세현 =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와 관련된 국내 여론에는 항심(恒心)이 없다. 권오기 전 통일원 장관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2 대 6 대 2라고 한 적이 있다. 보수가 20%, 진보가 20%, 중도가 60%라는 것이다. 정부가 보수적인 정책을 구사하면 보수 쪽이 찬성하고 중도가 여기에 가세해서 60% 정도는 따라온다는 말이다. 김대중 정부 때도 햇볕정책 들고 나왔을 때 정부가 설명을 잘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지지했다. 심지어 2002년 서해교전 직후에도 대북정책 지지도가 80%를 넘었다.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지도자는 오피니언 ‘리더(leader)’이지 ‘팔로어(follower)’가 아니지 않은가. 옳다고 생각하면 설득해서 끌고나가야 한다.

 

송민순 = 조지 케넌의 말대로 외교는 정해진 공식대로 움직이는 기계공학이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에 따라서 작물을 가꾸어내는 원예가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대북정책도 이런 관점에서 해야 한다. 국민 60%의 기본적인 생각은 안정적인 대북관계일 것이다. 5·24 조치도 마찬가지다. 이제 4년이 다 되어가는데, 북한한테 도발하면 응징한다고 이미 충분히 보여줬다. 이걸 언제까지 들고 있을 수는 없다. 북한에서 대화하자는 신호가 오면 우리는 ‘행동으로 작은 움직임을 주면 우리가 두세 발 더 나간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지금의 대북정책은 너무 기계공학적인 것 같다. 정리 | 유신모·홍진수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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