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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이상한 교전

by gino's 2014. 10. 13.

남과 북의 경계선에서 총질이 잦아졌다. 심각한 상황과는 거리가 먼, 빈 총질에 가까웠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지난 10일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군의 고사총이 불을 뿜었다.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한 민간단체의 전단 풍선을 겨냥한 총격이었다. 공중을 향해 날린 총탄 몇발이 우리 측 민통선 지역에 떨어진 것이 자칫 충돌의 화근이 될 뻔했다. 하지만 우리 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확인이 안되는 도발 원점 대신 가장 가까운 북한군 관측초소(GP)에 대응사격을 하는 것에 그쳤다. 40여발의 기관총탄을 발사했지만 북측 GP를 향했을 뿐 조준하지는 않았다. 양측 모두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한 셈이다.

지난 7일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과 우리 고속함 간의 교전 역시 10여분 동안 소리만 요란했을 뿐 빈 총격에 가까웠다. 북측 경비정이 발사한 기관총탄은 어차피 사거리가 짧아 우리 고속함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 해군의 경고사격과 함포 대응사격 역시 북한 경비정을 조준한 것이 아니었다. “남북 간에 상호교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해석 탓에 ‘교전’으로 격상됐을 뿐이다. 하지만 빈 총질이라도 잦아지면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2011~2013년까지 3년 동안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대해 우리 해군은 단 3회의 경고사격을 했지만, 올해는 벌써 6회에 달했다. 이번엔 2009년 대청해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 함정을 향한 대응사격으로 이어졌다.

북 경비정 서해 NLL 침범 상호 시격 (출처 : 경향DB)


두 건의 이상한 교전으로 확인된 사실은 남과 북, 어느 쪽도 확전을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서부전선사령부는 2012년 공개경고장을 통해 대북 전단(삐라)의 살포지점을 도발 원점이라고 규정하고, 물리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밝혔지만 타격목표를 완화했다. 그럼에도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결과에만 연연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할 것이다. 두 건의 교전이 던지는 표면적인 메시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는 지난해 봄의 ‘핵전쟁 위기’ 이후 급속히 군사화하고 있다. 5·24 조치 해제 문제와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등 한반도 이슈 가운데 유일하게 진전돼온 것은 군사적 움직임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20여차례 미사일 및 로켓을 시험발사해왔다. 한번에 5기만 쏘았다고 해도 100기가 넘는다. 한·미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공격 조짐을 사전에 탐지해 선제타격하겠다는 킬체인의 구축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전투기와 포대를 동원하려던 한국의 보복공격을 가까스로 뜯어말렸던 미국도 군사적 대비에서는 되레 한발 더 나가고 있다.

주한미군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강행할 태세이고, 무인정찰기를 비롯한 대북 감시자산의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중 주일미군에 최신형 줌웰트급 구축함을 배치해 동해상의 대북 감시능력을 강화한다는 말도 들린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이 늘어남에 따라 한·미의 대북 군사적 태세가 강화되고, 다시 북한으로 하여금 추가적인 무기개발의 동기를 부여하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의 이해당사국들이 모두 전쟁을 원치 않으면서도 모두가 군사적 대비에 올인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충돌의 개연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맞춤형 대북 억제전략이 채택된 지난해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어떠한 대화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역시 대화 용의를 잃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 열릴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의 의미는 심대하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도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포함한 대화 의지를 표명한 터이다. 갈수록 군사화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비군사적인 출구를 마련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민간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는 더 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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