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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침을 열며

분노하라, 외쳐라, 연대하라

by gino's 2011. 6. 19.

아침을 열며 

누구나 평균적인 삶을 꿈꿀 권리가 있다. 월스트리트의 ‘살찐 고양이들’이 탐욕의 분탕질 끝에 초래한 글로벌 경제위기 3년차, 지구촌 곳곳에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등록금 상한을 과감하게 3배나 올린 보수·자민 연합정부에 반발한 영국 대학생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석사학위를 받아도 계약직, 임시직에 머무르기 십상인 한계상황이다. 등록금마저 올리자 분노의 뚜껑이 열린 것이다.


<경향신문 DB>

올 들어 전혀 새로운 성격의 시위는 지난달 15일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비롯됐다.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노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순식간에 5만여명으로 불어났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모이고, 외치며, 연대한 청년들이다. 종래의 시위가 아니었다. 시위이자 축제이며 새로운 사회를 열기 위한 향연에 가까웠다.

어떠한 기성정당이나 거대 노동조합도 배제된 이유다. 그들에겐 보수 인민당은 물론 진보를 표방하지만 뼛속까지 부패한 사회당도 더이상 대안이 아니다. 자신들의 절박한 현실을 대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관계망에서 정한 양대 원칙은 자발적, 비폭력적 시위다. 인디그나노스의 온라인 지도부인 ‘진짜 민주주의’는 이를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이라고 선언했다. 긴축 및 부패에 대한 투쟁, 정치 시스템의 개혁, 시민적인 미디어 등의 강령도 발표했다. 같은 이름, 같은 정신의 시위는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프랑스 ‘분노의 시위’는 지난달 29일 열흘 뒤 바스티유 광장에서 3000여명의 청년이 모이면서 전국 50여개 도시로 퍼지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는 그리스에서는 지난달 25일 분노의 시위가 열리더니 열흘쯤 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50만명이 운집했다. 22일 동안 이어오던 비폭력 평화시위가 지난 15일 그리스 공공부문 노조의 총파업과 경찰의 과잉진압이 맞물리면서 변질됐지만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요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스페인 시위에 참여하는 200여개의 단체 가운데 ‘미래 없는 젊음’이라는 단체명이 이를 대변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하는 사회경제적 구조와 가진 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중심줄기다. 성난 청년들과 실업자, 서민들만 거리로 나오는 게 아니다. 살림이 푼푼한 중산층은 물론 일부 기업인도 지지하고 있다.

분노의 배경에는 물론 전 세계적인 경제난이 놓여 있다. 유럽언론은 여기에 지난해 말 출간돼 200만부 이상 팔린 노(老)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소책자 <분노하라>가 지침이 되고 있다고 전한다. 올해 초부터 아랍권을 달구는 ‘재스민 혁명’과 고립된 청년들에게 연대의 날개를 달아준 사회적관계망도 한몫을 했다. 인간이고 싶으면 분노하라, 분노하되 격분하지 말라는 에셀의 메시지가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글로벌 풍경이다.

지난달 29일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타난 대학생 200여명이 불붙인 반값 등록금 투쟁이 현재진행형이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시달리는 청년들이다. 졸업 뒤 일자리 걱정도 태산이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옆집 대학생 학비를 더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인사가 밥을 버는 수구언론, 무능하고 무책임한 교육당국, 사립대학의 게으른 탐욕, 필수적 현안을 방치해온 정치권이 공동정범이다.

사회협약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전국협의회나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도 지난 정권 시절 노·사·정 협의회로 시도를 한 바 있다. 불행히도 집권여당이 주도하면서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지 못했다. 의제도 노동문제로 제한됐다. 이번엔 모든 정당과 노동조합, 학생, 시민사회가 하나의 원탁에 앉아 머리를 맞대야 할 절박한 시대적 요구가 있다. 재벌도 포함해야 한다. 국가가 갈 방향에 대한 큰 틀의 공감대를 이루고 반값 등록금과 무상급식, 교육, 복지개혁, 경제개발의 속도와 성격 등을 하위주제로 설정해야 한다. 정치적 아젠다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또 다시 방향을 잃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받을 권리는 기본권인가, 개인의 책임인가. 등록금 경감은 부자의 돈을 강탈해 빈자에게 주는 포퓰리스트적 발상인가, 경제적인 문제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기본권인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명시해놓은 대한민국 헌법이 논의의 출발점일 수 있다. 

대선까지는 18개월이나 남았다. 국민적 토론의 결과물을 담아내야 진정한 공약이 된다. 비폭력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촛불을 무서워만 할 일은 아니다. 청년들이 죽어간다. 자칫 모두가 무너질 수도, 모두가 일어설 수도 있는 문제다. 우리는 경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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