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피 한방울 안섞인 양아들일지언정, 아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흠결이 많았던 아버지였건만, 달리 보면 광영도 있지 않았겠나. 아들 스스로 팔순에 접어든 나이에 광화문이건 어디에 아버지 동상을 다시 세우고 싶은 생각도 가질 수 있었겠다 싶었다. 아버지의 공과를 보아달라는 주문 역시 과한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문제는 그 아버지가 이승만이라는 데 있다.
4·19 묘역 입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 (경향신문 DB)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씨가 올 4·19 학생혁명 기념일을 전후해서 여론의 초점을 받았다. 하이라이트는 ‘희생된 학생들과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기 위해’ 서울 수유리 4·19 국립묘지를 방문한 이씨 일행이 떠밀려나는 순간이었다. 4·19 유족회 측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을 거절사유로 꼽았다. 사과를 온다면서 4·19 관련단체들에 미리 의사를 묻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했다. 제주(祭主) 허락없이 제사에 참가하려 한 셈이다. 애초부터 일단 행동을 보여주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급급했던 인상이다. 이씨는 “당시 정부 잘못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심정을 잘 안다”면서 통큰 이해를 보였다. 선친의 잘못을 자식이 빌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독재자의 아들’이라는 불편한 꼬리표를 달고 반세기를 살아왔을 이인수씨이다.
하지만 이날의 해프닝을 통속적인 ‘사과의 미학’으로만 접근하면 심각한 착시(錯視)가 생긴다. 우선 거칠게 내몰림을 당한 이씨가 약자로 보이는 착시가 있다. 이씨는 선친의 사후 명예를 위해 외롭게 고투하는 처지가 아니다. 미찬가지로 이씨의 선친이 억울하게 내몰린 과거의 권력자도 아니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는 ‘이승만의 아이들’이 여전히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4·19 묘지 방문한 이승만의 양자
이씨의 역사 바로세우기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이적표현물이라면서 작가 조정래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했다. 우연히 고려대 상대 후배가 대통령이 된 3년 전부터는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부쩍 잦아졌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을 명(明), 넓을 박(博)이라는 이름처럼 세상이 좀 바로되지 않겠느냐”면서 선친에 대한 재평가를 기대했다. 올해 초에는 이기수 전 고대 총장을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영입했다. 친미·반미, 친북·반북의 이분법에는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도 유독 친일·반일의 경계만은 집요하게 흐려놓으려는 언론계, 학계, 정계 인사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더 큰 문제는 선친의 건국정신을 헌법에 명시된 4·19정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사고방식이다. 이인수씨는 해방에서 정부수립까지 3년 세월 동안 수많은 지도자들 가운데 ‘유일한 창업자’로서 이승만의 역할을 강조한다. 하지만 건국 대통령의 신화는 불행히도 몇가지 논리적 비약을 해야만 성립된다. 무엇보다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자유 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건국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또 어쩌랴. 이승만은 그 민주주의를 스스로 배반했다. 그래도 첫 대통령이니까 애써 공적을 살펴야 한다?
올해 초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아무리 국가에 공적이 있다해도 독재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일깨워준다. 민주화 시위 군중에 대한 발포책임으로 사법처리될 운명에 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은 누란의 위기에서 국가를 살려낸 전쟁영웅이다. “물러날테니 처벌만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살레는 어떤가. 예멘의 첫 통일 대통령이다. 전투기까지 동원해 시위군중을 학살하던 카다피는 적어도 리비아 수구세력에는 여전히 불세출의 영웅이다. 국제사회가 리비아를 공격할 근거를 제공해준 국민보호책임(R2P)의 정신에 비춰보아도 답은 같다. 불과 며칠간의 시위 동안 186명의 학생과 시민을 학살한 4·19 유혈사태의 책임자는 국제사회가 완력으로라도 권좌에서 내쫓아야 할 대상이다. 고상하게 재평가를 운운하는 대신, 죄는 있으나 국가에 공헌한 점을 들어 면죄부를 주자는 한국적 구상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지 않나 싶다.
‘섣부른 사과’ 되레 상처 덧들여
이인수씨 입장에서는 선친을 제외한 그동안의 대통령들이 모두 역사를 왜곡했거나 진실을 숨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부인한 사람은 없다. 수유리에서 참배를 저지한 사람들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일방적이고, 섣부른 사과는 되레 상처를 덧들인다. 이승만의 복권은 그가 길을 연 분단의 여정이 끝난 뒤에 정리해도 될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