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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침을 열며

남수단의 “우리 북쪽 형제들”

by gino's 2011. 7. 10.

아침을 열며 

평화는 게릴라처럼 찾아왔다.
식민 영국이 분탕치고 떠난 긴 내전의 땅, 수단. 노예사냥에 이은 인종청소, 이슬람과 기독교 및 토속신앙 등 종교의 모자이크, 아랍인과 딩카, 누에르 등 다양한 부족의 아프리카인들, 석유가 뒤엉켜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땅이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랜 내전을 겪어온 나라이기도 하다. 유엔 추계로는 1983년 이후 2005년까지 2차 내전에서 죽은 사람만 200만명이다. 400만명이 집도, 절도 없는 유랑민이 됐고, 또 다른 100만명이 디아스포라로 나라 밖을 헤매고 있다. 국민 8명 중 한 명이 죽거나, 뿌리뽑힌 삶을 이어온 지난 반세기 동안 평화는 어쩌다 살짝 얼굴을 비치는 손님이었다. 
 

남수단 새 국기를 치켜든 남자를 에워싸고 어린이들이 양손을 흔들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평화는 기다림이기도 했다. 2005년 국제사회의 중재로 내전을 공식 종료하고 포괄적 평화협정을 맺었다. 자치정부(GOSS) 형태로 꼬박 6년을 더 기다려 지난 1월 독립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치렀다. 98.8%의 압도적 찬성이 나왔지만 다시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북에 살던 남수단인 52만여명의 귀향에 필요한 기간이었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9일 출범한 독립국가 남수단에 축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평화로의 장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단 정부군은 지난달 말까지 유전이 몰려 있는 공동행정구역 아비에이에 이어 남 코르도판 주 내 남수단 지지세력을 무차별 공격했다. 최근 한달여 동안에만 10만여명의 새로운 난민이 발생했다. 그중 30% 정도는 가족과 떨어져 길을 헤매는 아이들이다. 수단군은 전투기까지 동원해 남수단 출신 주민들을 조준, 공격했다. 한편에서 독립의 축포를 터뜨리면서도 ‘제2의 다르푸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남수단은 가급적 큰 싸움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기도, 병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수십년 내전을 감당해온 그들이다. 어렵사리 불을 지펴온 독립과 평화의 꿈이 깨질 것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번 꺼지면 또 다시 긴 분쟁의 터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역사에서 학습했기 때문이다. 남수단 측은 완충지대 설정을 호소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기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22년째 권좌를 지키고 있는 오마르 알 바시르 정권으로선 손해볼 게 없었다. 적당히 총질을 하다 물러나더라도 분쟁지역에 대한 기득권을 각인시킬 수 있어서다. 특히 남과 북 사이에 낀 유전지대 아비에이는 귀속권을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언제 다시 불붙을지 모르는 화약고다. 

신생국 남수단 정부의 국고는 비어 있다. ‘검은 땅’에서 하루 37만5000배럴의 석유를 퍼올리지만 수단과 어떻게 수입을 나눌지 정하지 못한 상태다. 300만명은 상시적으로 먹을거리가 부족하다. 성인인구의 85%가 문맹이고 인구의 반 이상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한다. 전체 전략생산능력이 25㎿에 그쳐 해만 지면 암흑에 잠긴다. 

자치정부의 지역협력국장 명함을 들고 지난달 초 서울을 찾았던 바악 발렌티노 아콜 월. 독립 뒤 서울과 남수단공화국의 수도가 될 주바에 대사관을 건립하는 문제, 신생국의 턱없이 부족한 병원과 학교, 도로 등 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지원을 청했다. 그에게 한국은 ‘식민과 내전, 남북 분단 등 남수단의 역사를 앞서 겪은 나라’였다. 그 경험과 지혜를 한 수 배우러왔다는 말에는 정치적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루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미래의 우방국을 찾아온 그는 한국의 아낌없는 지원을 기대했다. 

말끝마다 “우리의 북쪽 형제들(our northern brothers)”을 후렴구처럼 붙였다. 반세기 넘게 싸워온 철천지 원수들, 종교도 인종도 다른 북수단 사람들을 ‘형제들’로 부르는 데는 독립의 그 순간까지 감정을 덧들이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묻어 났다. 평화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에게는 선배의 나라로 비쳤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남과 북에서 불과 3년 새 300만명이 산화한 전쟁을 치르고도 기회 있을 때마다 상대를 자극하는 사람들. 그 짓으로 ‘눈먼 애국’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동아시아의 한 분단국가보다는 성숙한 자세다. 피붙이를 잃고, 정든 땅을 떠나야 하는 비탄의 땅에서 평화를 향한 오체투지는 그리 계속되고 있다. 

남수단 톤즈의 결코 울지 않는 사람들을 울린 고 이태석 신부는 생전에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고 물었다. ‘되어 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 그 친구를 도우면서 평화를 희구하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남수단의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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