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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침을 열며

중동에 부는 에르도안 바람

by gino's 2011. 9. 18.

아침을 열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지만 지난주 리비아를 둘러싼 각국의 외교전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뒤늦게 재주판에 끼어든 구경꾼이 정치적, 경제적 자산을 톡톡히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첫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지난 2월 중순 이후 공습을 주도한 프랑스와 영국이 곰이라면, 상황을 배후조종한 미국은 왕서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를 움직여 비행금지구역을 선포케 하는가 하면, 리비아 공습작전을 배후에서 주도했다. 세 나라의 역할에 비하면 터키는 구경꾼에 가까웠다. 
 
지난 15일 무아마르 카다피 군이 여전히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리비아를 가장 먼저 찾은 외국지도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다. 하지만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하루 뒤 트리폴리를 찾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다. 서구식 외교행보와는 사뭇 달랐다. 리비아 혁명의 요람인 순교자의 광장에서 열린 금요예배에서 무스타파 아메드 잘릴 과도국가위 위원장과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예배 집전자는 “알라 다음으로 우리의 친구인 에르도안과 터키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선언했다. 광장의 군중은 새 리비아 국기와 터키 국기를 함께 흔들었다. 에르도안은 지난주 찾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도 록스타와 같은 환대를 받았다. 재스민 혁명을 통해 독재자 축출에 성공한 세 나라를 둘러보는 ‘아랍의 봄 투어’였다.

올 초부터 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된 중동·북아프리카에서 미국이나 서방이 아닌, 터키가 챔피언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르도안은 성공적인 이슬람 민주주의 국가의 모델로 터키를 제시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만 2000억달러로 추산되는 재선특수에 빨대를 꼽는 경쟁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아랍 3국 투어에는 200여명의 재계 대표들이 동행했다.

에르도안은 이제 십자군에게 빼앗겼던 예루살렘을 12세기 말에 탈환한 이슬람권의 영웅, 술탄 살라딘에까지 비유된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한 아랍·아메리칸 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에르도안의 지역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레바논에선 응답자의 80%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98%가 지지했다. 이집트에서는 62%에 불과했지만,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책 지지율(3%)과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에르도안의 외교가 주변 이슬람권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에 대해 강경한 태세를 거듭 천명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터키 선적의 가자지구 구호선을 공격한 것을 빌미로 기회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꾸짖고 있는 것이 인기의 한 축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뿌리는 더 멀리 뻗쳐 있다.

2002년 집권 이후 꾸준히 품을 들여온 ‘갈등 없는 이웃(No problems with neighbors)정책’의 결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군사·정치적인 이해가 중심이었던 이스라엘과 경제적 실익이 있는 아랍권 사이에서 실용노선을 취했다.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전까지는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의 화해를 주선했다. 이후 봉쇄된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노력에 앞장서는 한편 팔레스타인을 두둔하고 있다. 브라질과 함께 서방의 의도에서 비켜나 이란의 우라늄농축을 대행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러시아와 에너지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뼛속까지 반미인 이란의 이슬람정부와는 궤를 달리한다. 

나토 회원국으로 미사일방어(MD)망의 핵심시설인 레이더 기지 유치를 최근 결정,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려는 서방의 움직임에 동참했다. 여전히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역시 네타냐후의 우파정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은 떼놓고 있다. 터키의 유대인공동체가 에르도안의 이스라엘 외교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는 이유다. 서방이 중동지역에서 쌓아온 터키의 외교적 자산을 활용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도 바로 이 균형감 때문이다. 터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미국이 아랍혁명의 부작용으로 가장 경계하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차단하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터키의 외교적 변신은 냉전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수십년 동안 미국과 서방 쪽으로 쏠렸던 시선에 다초점렌즈를 씌웠기에 가능했다. 여전히 냉전의 족쇄, 미국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아시아 한 분단국 입장에선 부러운 변신이다. 미국 쏠림 외교를 벗어나기 전에는 기껏 이상득 의원 방식의 ‘자원외교’에나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다.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로 날아가 카다피에게 말끝마다 “아프리카와 아랍의 통합을 주도하시고 계시는 왕중의 왕,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 각하”라고 치켜세웠다던가. 불과 11개월 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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