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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침을 열며

김정일이 또 중국에 간 까닭은

by gino's 2011. 5. 23.

아침을 열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별열차가 두만강을 건너 도문을 지나고 있음이 확인된 시간은 지난 20일 아침 7시쯤. 1년 새 세번째 중국 방문길이다. 이번에도 한국 언론은 덜렁 지도 한 장을 놓고 풍부한 상상력을 풀어야 한다. 북한 최고 지도부의 동선에 대한 정보에는 미지의 영역이 넓어서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엔 첫날부터 징후가 좋지 않았다. 



대보름 음악회 참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부자 (2011.02.18)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한국 언론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집단 오보를 했다. 방중한 북한 지도자가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꼬박 한나절 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중국 측이 우리 정부에 이례적으로 통보해준 덕에 오후 늦게부터야 김정일의 단독방북으로 가닥을 잡았다. 방중 목적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김정일이 식량지원이 급해서 갔다고 하고 다른 이는 작년 8월에 이어 중국의 창(창춘)-지(지린)-투(투먼) 개발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의도라고도 한다. 북핵 6자회담과 권력승계문제를 중국에 인정받으려는 수순이라는 독특한 해설도 나온다. 그 몇가지 재료를 버무려서 내놓는 전문가들의 해설과 전망 역시 어디까지 사실에 근거했는지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분분한 설…정보판단 오류

문제는 중요 정보를 독점하는 정부까지 혼동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둘리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 고위 당국자들이 잇달아 김정은을 초청한 만큼 그가 특별열차에 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을 청와대 외교안보팀의 핵심브레인이 했다면 말이 달라진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3년 전 여름까지만 해도 놀라운 투시력을 과시했던 정보당국의 ‘총기’도 흐려졌다.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나오자마자 “뇌졸중인데 양치질은 할 정도”라는 등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게 파악했다. 같은 정보당국이 이번에는 ‘김정은 방중’이라는 첫 판단 착오를 범했다고 전해진다. 행선지는 베이징이 아닌 동북지방으로 추정됐다. 특별열차의 월경 시간을 제외하곤 관계당국의 첫 보고 가운데 들어맞은 게 없다. 

물론 북한 체제 및 북·중 관계의 폐쇄성은 언제라도 이번과 같은 정보판단의 기본적인 오류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정보판단의 오류가 북한이 어차피 망할 정권이라는 선험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외교와 안보 모두에서 심각한 파탄이 아닐 수 없다. 대북 관측통들은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이후 북한에는 국가적 결정에 입김을 미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난해 연평도 도발 이후 북한의 예측가능지수는 더욱 낮아졌다. 그만큼 북한 내부를 향하는 물음표는 쌓여만 간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2009년 12월 김정일을 만난 중국의 고위관계자는 그가 건강악화 탓에 결정을 번복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신임을 얻고자 다양한 파벌이 각각 다른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단호한 방향설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예측 습관은 여전하다. 2008년 건강이상설 당시 ‘향후 3년 정도’로 거론됐던 김 위원장의 예상수명은 2배가 늘었다. 역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7월 방한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게 김 위원장이 늦어도 2015년을 넘겨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하루 1000㎞를 주파하면서 대륙을 누비고 있다. 건강이 획기적으로 나아진 것인지, 9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가야만 하는 긴박한 사정은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김정은이 왜 홀로 중국 측의 초청에 응하지 못했는지, 식량사정은 어느 정도인지 역시 의문이다. 

외교·안보 ‘심각한 파탄’ 우려

미국이 이번주 로버트 킹 인권특사를 북한에 보내는 것도 갑자기 북한의 식량난이 걱정돼서만은 아닐 것이다. 북한에 대해 갈수록 물음표가 많아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 기다리는 게 전략이라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른바 인게이지먼트라고 하는 적극적인 상대(相對)를 시도하는 까닭이다. 좋건, 싫건 상대하지 않으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미수(米壽)에 <중국에 대하여(On China)>라는 저서를 내놓은 헨리 키신저는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뒤 “북한 문제는 그나마 미국이 직면한 외교적 현안 가운데 쉬운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경지에 오른 그에게는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난제다. 북한이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외교와 안보를 계속 맡기는 한 더욱 어려워질 문제다. 설사 망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하는 게 인게이지먼트고, 외교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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