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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오늘

반기문 사무총장의 첫날

by gino's 2016. 5. 20.

반기문 사무총장 “책무 무겁지만 가슴이 뛰고 있다”

2일(현지시간) 뉴욕의 아침 날씨는 약간 쌀쌀했지만 햇살이 좋았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아침 9시25분 양복정장에 검정색 트랜치코트 차림으로 임시숙소인 월도프 아리토리아호텔의 방을 나섰다. 비자이 남비아르 비서실장이 로비에서 반총장을 맞았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반총장은 비서실장과 함께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쾌청한 맨해튼의 보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총장을 알아보는 뉴욕 시민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이날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업무를 시작한 반총장은 첫 출근을 ‘맨해튼 산책’으로 열었다. 유엔본부까지 15분 남짓한 산책은 앞으로 5년간 유엔을 이끌 반총장에게는 의미깊은 첫 발이었다.

오전 9시45분 유엔본부 앞에는 의전실 및 비서실 직원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반기문 총장은 1층 묵상실로 들어가 숨진 유엔평화유지군 병사들을 추도했다. “다르푸르에서 중동까지, 레바논, 이란, 이라크, 북한 등 많은 위기가 진행되는 어려운 시기에 사무총장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게 됐다.” 반총장은 2층 유엔 총회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단과 선 채로 회견을 했다.

반총장은 이달 말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리는 아프리카연맹(AU) 정상회의에 참석,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 등과 만날 예정이라며 많은 현안 가운데 수단 다르푸르 사태 해결에 즉각 뛰어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반총장은 기자회견중 “내 이름은 모든 것을 금지하는 밴(ban)이 아니라 반(Ban)”이라며 건설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자고 제안했다. 자칫 긴장되고 무거운 분위기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반총장의 이번주 목표는 가급적 많은 유엔 직원들과 어깨를 부딪치겠다는 것.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곧바로 집무실 및 비서실이 있는 38층으로 올라가 직원들과 첫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사무실과 필드를 옮겨다니는 이동성과 전문성 개발을 주문했다.

유엔 사무국 규정은 5년에 한번씩 필드와 사무실 순환근무를 규정해놓고 있지만 사문화된 지 오래. 반총장은 필드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안전보장이사회 순회의장국인 러시아의 비탈리 추르킨 유엔 대사와도 현안을 의논했다.

오후 1시 작은 ‘소동’이 일었다. 반총장은 느닷없이 1층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들겠다고 나섰다. 사전 점검을 못한 경호팀은 일순 당황했지만 반총장은 서울에서 합류한 유엔 대변인실의 최성아씨만 대동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돈 6000~7000원에 음료수까지 해결할 수 있는 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는 반총장은 지나치는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눴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유엔평화유지군 행정국(DPKO) 직원들에게 아이티 현장 근무 당시 고충을 묻기도 했다. 반총장은 “공식 일정이 없을 때는 이곳에서 함께 식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인종, 다문화의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관용의 모듬살이에 익숙해진 유엔 본부라곤해도 직원식당 격인 카페테리아에서 부담없이 말을 건넨 반총장의 친화력은 작은 파격이었다. 많은 직원들이 호감을 표했다는 전언이다. 반총장의 ‘파격’은 유엔 본부의 가장 낮은 곳, 지하 3층 방문에서 또 한번 이어졌다.

유엔에 수년씩 근무해온 비서실 직원들조차 한번도 찾지 않은 곳이다. 보일러실과 상황실, 인쇄실 등 지하 3층 직원들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 6시30분. 분주했던 첫날 업무가 끝났다. 사무총장은 유엔의 ‘보스’다. 출·퇴근 시간은 본인이 정한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의 경우 점심을 여유있게 먹고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근무하기도 했다. 반총장은 외교부장관 재직시절처럼 오전 7시 출근 계획을 밝혔지만 당분간 직원들의 근무시간에 맞출 요량이다.

퇴근길은 방탄 승용차를 이용했다. 부인 류순택씨와 LA에서 유학 중(MBA)인 아들 우현씨가 찾아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극히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저녁식사는 집에서 먹는 뉴요커들의 생활방식에 따른 것이다. 식사 전 1991년 유엔에 가입한 동아시아의 한 회원국 대통령과 통화를 나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축하 받는 기간은 끝났다. 이제 무거운 책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여러분 앞에 섰지만 가슴은 뛰고 있다.” 반총장이 직원들에게 밝힌 첫날 소감이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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